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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Dec 21. 2016

친구가 그리운 밤

# 함께 걷는 이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제주도 사려니 숲길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 밤이 깊은 탓인지 생각도 깊어진다.

생각이 깊어지다 보니 인생이란 것이 뭐 있나 싶고, 그냥 격의 없게 숨김없이 나를 다 보여주면서 무방비 상태가 되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친구들과 두런두런 대화나 나누었으면 싶다. 굳이 깊이 있는 대화가 아니라도 좋다. 가십거리면 어떠랴, 웃을 일 없는 세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웃어버릴 수 있기만 해도 얼마나 좋은 일이랴 싶다.


그러나 그 흔한 번개를 쳐서 만날 수 있는 거리도 아니고, 이미 시간이 늦었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그 길들을 추억하며 긴 밤의 한 부분을 잠식할 수밖에.....



조릿대


그 겨울, 하루 종일 날씨는 흐려서 우울했고 저녁 무렵이 되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지.

그 숲길에 혼자 섯더라면, 미치지 않고서는 아마도 걸어볼 생각조차도 못했을 터인데 친구들이 있어 호기 있게 호젓한 산길을 걷기 시작했어.


눈발이 더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더 좋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 혼자서는 절대로 그런 눈발을 마주할 수 없었을 터이고, 동행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경험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랬을 거야.


또 한 해가 지나가니 헛헛했는지 며칠 뒤에 송년회 날자를 잡아놓고도 별 일도 없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전화를 해대면서 키득였다. 그 잠깐의 시간, 긴장을 풀고 그냥 사는 것이 뭐 그런 거지 대수인가 생각하니 긴장감이 눈 녹듯이 풀린다. 그래서 겨울비인가?



제주의 돌담


그래, 칼바람이 불었고 제주도답게 눈은 옆으로 쌓였어.

쌓인 것인지 붙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눈은 돌담 사이사이에 끼어버렸어.

강풍도 어쩌지 못했지.


친구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

그냥저냥 의미도 없이 몰려다니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누구도 흐트러트릴 수 없는 끈끈한 그 무엇이 우정이라는 것의 정체일지도.


그냥 친구가 그리운 밤이다.

그냥 그렇게 잠시 동안 친구들과 걸었던 그 길들을 더듬으며 밤의 편린을 보낸다.


아무것도 아닌, 아닌 것도 아닌 글도 아닌 글.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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