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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an 14. 2017

 부드러움에 대하여

# 부드러움의 영성

세복수초 - 제주도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柔能制剛(유능제강), 부드러울 유, 능할 능, 지을 제, 굳셀 강 -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짓는다.

곧, '부드러움이 강한 것이다.'라는 뜻이다.


부드러움의 반대말은 굳은 것이요, 굳어 버린 것은 곧 죽음이므로 부드러움은 생명에 맞닿아있다.

생명, 살아있는 것은 부드럽다.

이른 봄 언 땅을 뚫고 피어나는 꽃도, 딱딱한 나무껍질을 뚫고 피어나는 새순도 신비롭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하고 딱딱한 것을 이기는 현실을 우리 눈으로 본다는 것은 축복이다.


새끼노루귀


언 땅을 녹이고 피어나는 것들 중에 부드럽지 않은 것이 있는가?

잘 여문 씨앗들도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굳어진 마음을 물로 씻어 부드럽게 한 후에야 비로소 새싹을 낸다.


우리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거짓 신화를 진실인 듯 믿고 살아간다.

일부는 맞지만, 대체로 틀린 신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강자들이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세뇌시킨 결과 약자들 스스로도 내재화하여, 자신들이 강자들에게 지배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다.


변산바람꽃


장석주 시인은 ‘부드러움의 바탕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라고 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형식을 '관용'이라고 했다. 앙드레 모루아의 <프랑스사>에 의하면 ‘똘레랑스’(관용)가 오늘날의 프랑스를 있게 한 원천이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다. 이 관용의 정신이 있었기에, 프랑스는 오늘날 문화와 예술을 넘어선 정신적인 가치를 주도하고 있고, 그 덕분에 자국민 스스로 자의식이 높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드러운 갯벌이라야 생명을 품고, 그 생명을 담보로 또한 우리는 살아간다.


부드러움의 영성, 굳이 '영성'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는 현실의 강퍅함 때문이다.

이 현실의 강퍅함이란, '부드러움의 영성'을 가지고 살아가면 실패할 것이라거나 혹은 바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각오를 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다분히 종교적이고 신앙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것이기에 '영성'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갯벌에서 할머니 한 분이 조개를 캐고 있었다.

저 갯벌도 부드러우니 생명을 품고 있었으며, 조개의 부드러운 속살, 그 생명을 먹고 또한 우리는 생명을 얻는다. 타자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할지 분명해지지 않는가?

타자의 희생을 통해서 살아가는 존재인 인간, 그런데 어찌 타자에 대해서 강퍅한 마음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수선화


한 겨울 추위에 피어난 수선화, 그들 역시도 부드럽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다. 

차가운 겨울바람도 그들의 향기를 어쩌지 못하고, 그 향기에 취해 봄바람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런 점에서, 차가운 겨울바람도 따스한 바람이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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