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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pr 24. 2017

선유도와의 첫 만남은 서먹했다

# 선유도 전월리 선착장에서 새벽 산책을 하다

선유도 전월리 선착장


새만금사업 이후 배를 타지 않고도 고군산군도의 몇몇 섬들을 차량으로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신선들이 노니는 섬 '선유도', 가고 싶은 섬이었으나 그동안 단 한 번의 발자국도 남길 수 없었던 섬도 그중 하나다. 


난생처음 선유도와 조우하던 날, 너무 늦은 방문이었다. 새만금 방조제가 끝난 뒤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지나 숙소에 도착했으므로 가로등 불빛으로 보이는 선유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숙소가 있는 곳은 전월리 선착장 근처에 있는 펜션이었다.


전월리선착장에 정박된 배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일기예보에서는 내일 오전부터 종일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 아예 장마철처럼 많은 비가 올 것이라고도 했다.


새벽 이른 시간에 잠이 깨었다.

아직 비는 시작되지 않았다. 

시원한 바닷바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선유도를 걷는다. 걷는 걸음마다 이 섬에서의 첫걸음이다.


선유도 전월리선착장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장노출로 선착장에 정박된 배들을 담았다.

빛이 많지 않은 까닭에 ISO 100으로 고정을 시킨 후, 조리개 값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장노출을 담을 수 있었다.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았는데, 선착장 너머로 큰 산이 드러난다. 


대충, 내가 묵었던 곳이 어떤 지형에 들어있는지 알 것 같다.

날이 밝으면 눈으로 볼 수 있겠지.... 기대를 안고 발걸음이 닿는 대로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선유도


그 새벽에 나만 걷는 것은 아니었다.

토박이인듯한 큰 백구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 

머리가 쭈뼛 선다. 

만약 저 놈이 공격한다면 피할 수 없을 것 같고, 덩치가 작지 않으니 큰일이 날까도 싶다.

눈이 마주쳤다.

꼬리를 내리지 않는다. 젠장....

더 강력한 눈빛으로 백구의 눈을 바라본다.

그제야 그냥 제 길을 간다. 다행이다.

그러나 몇 차례, 먼발치에서 마주쳤으며 백구도 나도 서로를 경계하는 거리만큼의 거리를 유지했다.


선유도


그렇게 조금 걷는데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가 싶더니 황홀한' 매직 아워'의 시간이 펼쳐진다.

바다와 하늘의 빛이 다르지 않은 블루의 시간.... 매일 두 차례씩 온다고는 하지만, 쉽사리 만날 수 없는 시간이다. 가장 빛이 신비스러운 시간, 그래서 '매직 아워', 사진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찰칵! 찰칵!


조금만 더 준비를 했다면 좋았을 것을.... 장비에 대한 아쉬움. 

그러나 지금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내 이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선유도 전월리 선착장


어부들도 하나 둘 선착장으로 나오는 시간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신비한 시간이 지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서 바람도 깨어나기 시작했으며, 나는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지만... 점심을 먹은 후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정말, 장맛비 같았다.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군산으로 나왔다.

선유도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서먹거리고 어색했다. 그래서, 다시 가야만 한다. 그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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