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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ug 19. 2017

성도들의 헌신을 도둑질하지 말라

#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하는 이들의 헌신이 악한 것이 되지 않게 하라!


오늘 새벽예배에서 미가서 7장을 읽었다.

설교 모임에서 친구 목사들과 함께 갑론을박한 내용이 있었다.


'헌신'에 관한 것이었다.


미가서 6장 3절에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 도다.'라는 말씀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악한 일인지도 모르고 '부지런히 행하는 사람(헌신하는 사람)'은 어찌 되는가?

악한 일인지 모르기 때문에, 순수한 신앙적인 동기만으로 그는 신실한 신앙인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 신앙의 동기와 상관없이 그러한 헌신이 악을 공고화하므로 거짓 신앙인이라고 해야 할까?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악한 일을 공고화하는 일인데, 악한 일인 줄도 모르므로 회개할 기회조차도 없다는 것이 하나의 입장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런 헌신을 이용하는 거짓 메신저들의 문제라는 입장이 있었다. 그러나 소경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므로 소경과 함께 넘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를 했다.


결국,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정도에서 토론을 마쳤지만 여전히 나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100% 선도 100% 악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논리로 죄를 평준화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고백과 결단에 기초하고 있다. 


그 고백과 결단이 헛된 것이지 않으려면 스스로 묻고 또 물으며 끊임없이 갱신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구원의 확신' 은 이 땅의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갱신되는 것이지, 칼뱅의 튤립 신조처럼 '단 한 번의 구원'으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무거웠다.

소위 헌신 없는 진보와 부지런히 헌신하는 보수, 물론 신앙은 보수나 진보라는 프레임으로 나눌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소위 진보진영의 신앙인과 메신저들의 싹수없음을 수없이 목격했다. 말로는 온갖 선한 말로 개혁을 외치고, 불의와 싸운다고 하지만 그들이 개혁대상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보다도 더 개혁 대상인 이들을 수없이 만났다.


나는 신앙적인 열정과 확신으로 이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불의함과 내가 비판하는 메가 처치에 대한 부러움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로 남불'이라고, 과연 내게 소위 메가 처치의 메신저들과 같은 권력이 주어졌을 때 그들보다 선하게 교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 내게는 남아있는 것인가?


사실, 보수든 진보든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성'이 중요하다. 공감할 줄 아는 사람, Homo Sympaticus.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어도 타인을 배려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권위나 권력을 이용해서 군림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롤모델이 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많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그런 '남은 자들(그루터기)'을 통해서 희망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발자국을 따라서 협력하고 걸어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나도 롤모델이 되고. 너무 안이한가?


사도 바울은 '나를 본받으라!'라고 했다.

내가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은 상당히 까칠하고 저돌적인 사람이지만 나는 그의 그런 당당함이 좋다. '롤 모델'이라고 하니까, 건방지게 감히 롤모델이 되려고 하다니 거부감을 갖다가도 '본'이라고 하니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언어 사이의 미묘한 차 이때문일 것이다.


신앙은 일부분은 옳은 길과 악한 길 사이에 서 있을 수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 예와 아니오가 분명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헌신'도 사이의 헌신은 없다. 거짓 메신저들을 공고하게 해주는 '헌신'은 헌신하는 개별 존재의 동기가 아무리 순수해도 소경과 함께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적당한 '헌신'은 없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은 성도들의 헌신이 올바른 헌신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나를 돌아본다. 그들의 헌신을 도둑질하는 삯꾼이 아닌지. 그들의 헌신을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헌신이 되게 하는 것, 그것이 교회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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