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창고를 정리하다 만난 사진들 몇 컷
사진들을 고른다.
주제나 의미나 철학이나 다 집어치우고, 그냥 거실에 한 장쯤 걸어도 될 만큼의 사진이다.
그러니까, 그냥 '어머, 예뻐! 저 정도의 가격이면 하나 사도 되겠어!'할 정도의 사진 말이다.
사진작가로서 사진전시회는 하나의 자극기 제다.
그러나 주제도 없이 그저 예쁜 사진만 전시를 한다면, 자질에 대한 의심부터 그간 해왔던 작업들 조차도 훼손당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진들을 고르고 있다.
어떤, 잘 알지도 못하는, 무뚝뚝하고, 건방지고, 굽힐 줄 모르고 그런 인물인 데다가 생활력도 없는 그 어떤 작자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내 친구다.
친구라 하기에는 쑥스러운 페북 친구다.
그래서 간혹, 그의 소식을 보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름 의미 있어!'생각하며 응원을 한다.
어쩌면 그 친구도 나를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눈인사를 나누려고 고개까지 끄덕했는데 외면을 당한 이후 말을 섞어 본 적이 없으니 친구도 아니다.
그런데 점점 이 친구가 나를 실망시킨다.
지질해진다.
그러면 안되는데, 내가 못하는 것을 이 친구가 해줘야 하는데....
차비도 없어서 가야 할 곳을 가지 못하질 않나,
그리 비싸지도 않은 광고 상품 좋아요 눌러놓고서는 사지도 못하고 마음만 들키고,
새어 나오는 푸념 속에는 살아온 이력에 대한 후회는 아니지만, 이렇게 산 것이 잘 살아온 것일까 하는 회의감 가득히 느껴지도록, 자기 속내를 숨기지도 못하는.....
잘 살았고, 제법 사람답게 살아왔는데,
그래서 나처럼 적당히 내 살 궁리 하면서 적당히 발 담갔다 빼는 나 같은 사람도 위로받았는데,
그는 이제 체념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복잡다단한 세상과의 연을 접고 저 시골 어디로 가서 그저 몸 부지런히 움직여 하루 세끼 건사하며 살고 싶단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런 사람이 그렇게 살면,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건데.
그래서 사진을 고른다.
까짓 거 아주 저렴하게 팔지 뭐.
재료비를 빼고 조금 남을 정도만 받고 팔지 뭐.
그러려면 유명 작가도 아닌데 무슨 주제 나부랭이로 접근하면 사서 걸어두기도 민망할 터이니 그냥 잠시 걸어두었다가 싫증 나면 버려도 별로 아깝게 생각하지 않은 정도의 예쁜 것 정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그에게 떠넘기고 살아온 이들의 마음을 자극해서한 점씩 팔아달라고 부탁을 하지 뭐.
그리고 다리 건너 그 친구도 초청을 하는 거야. 전시회 마지막 날....
"너를 위해서 전시회를 마련했어.
뭐 동정하는 것은 아니야, 내 몫을 대신해주었으니 빚 갚는 거야.
그리고 말이야, 인사를 하면 몰라도 받아야지, 난 네가 영웅주의에 빠진 줄 알았잖아.
그걸 엄청나게 싫어하거든.
더 많이 모으고 싶었는데, 내가 변변치 않다."
아직은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일단 나는 사진을 고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팔아서 밥이 되는 사진이었어야 했는데...
살짝, 아니 많이 후회가 된다.
*아직 확정된 계획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구상 중입니다. 진행이 된다면, 자세한 소식을 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