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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Oct 21. 2017

낡은 일상에 대한 감사

#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떠나보낸 후에 알았다.

강화도 오일장에서


낡은 일상에 대한 감사 1


젊었을 땐, 참 잘 걸어 다녔어.

마니산 정도는 그냥 한 숨에 뛰어 올라갔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지.

긍께.....

이제 다리가 영 못쓰게 되었어. 겨우 걸어 다니니까. 

그때 말이여, 그 젊은 시절에 참 걸어 다녔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그때는 그걸 몰랐어.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걸어 다닐 수는 있잖아. 그래서 감사하지.

걷지도 못하고, 혼자서 대소변도 못 가리면 얼마나 인생이 허무하겠어.


석모도 보문사 입구


낡은 일상에 대한 감사 2


감사란 것이 별것 아녀.

별것 아닌 이유는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그냥 감사 투성이지 뭐.

어떨 때는 힘들기도 하지만, 

더 힘든 일도 있었는데 그 정도는 뭐 감당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지내다 보면 지나가더라고.

내가 눈이 좀 나빠.

천 원짜린지 만 원짜린지 정확하게 좀 봐줘.

오만 원짜리가 나온 뒤로는 오천 원짜리하고 영 구분하기가 힘들어.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보이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안 보이는 사람도 있는데, 지금까지 먹고사는데 지장 없을 만큼이었으니까 감사하지.

젊은 양반, 책 글씨 보일 때 책 많이 봐.

나중엔 보고 싶어도 안 보이는 때가 올지 몰라. 


외포 수산시장


낡은 일상에 대한 감사 3 


그들을 보면서 아유슈비츠, 제주 4.3, 제노사이드의 현장을 떠올렸다.

저것이 굴비가 아니라 사람이었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내는 제주도에서 만들어먹던 겡이 죽 레시피를 이야기했다. 


레시피 하나 - 게


산채로 갈아야 맛있어요.

믹서기에 곱게 갈아준 후에.... 그 말에 나는 딱 걸려버렸다.


레시피 둘 - 개


어떤 걸로?

저게 맛있어 보인다.

전기충격기로 기절을 시킨 후, 15분 만에 그 개를 고른 젊은 여자의 손에 들려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철장에 갇힌 개들의 눈엔 공포가 가득하다.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의 지갑에서 꺼내진 15만 원이 건네진다.

놀랐다. 직접 와서 골라서 먹는 재미가 좋다는 신/세/대/?/

모란장에서.


부끄럽지만,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간이라서 수모도 받고 살아간다고 하지만, 알지 못하면서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인간만이 죽음을 인식한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인간은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진부하고 낡은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 배고프다는 것, 맛있다고 느끼는 것 모두 낡은 일상의 연장선이다.

그리고 또 다른....
강화도 오일장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던 모든 것, 

그때는 그저 일상이어서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이렇게 감사한 것인지는 떠나보낸 뒤에야 비로소 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릿해지고, 배도 고프지 않고 그냥 살기 위해서 억지로 먹어야만 하는, 그리고 경쟁 세상에서 비참하게 내동댕이질 쳐지고 나면.... 지금 내게 주어진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알게 된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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