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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27. 2018

산수국

# 가고 옴의 자연스럼을 보다

미세먼지로 맑은 하늘이 실종되었다.

우울해진 마음에 아직은 황량한 '비밀정원'에 올라 흙을 고른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정원은 돌이 많아 삽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였으나 강원도 산간의 밭이나 제주도만큼은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몇 년 골라내다 보면 돌 하나 없는 옥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단, 내가 부지런히 비밀정원을 가꾼다는 보장이 있다면 말이다.


미세먼지로 맑은 하늘은 실종되었어도 봄은 쉬지 않고 달려오고 있었다.

지난해 친구의 정원에서 얻어다 싶은 산수국, 첫해라서 그런지 꽃이 피긴 했지만 제대로 산수국답게 피어나질 못했었다. 게다가 그늘이라는 조건은 맞는데 물이 부족했다. 수시로 물을 주었어야 했는데 게으르기도 했고, 가뭄도 워낙에 심해서 산수국이 생존하느라 고생을 심하게 했다.


산수국(7-8월에 꽃이 핀다.)


수국은 흙의 속내를 드러내는 꽃이다.

심긴 곳에 따라 다른 색깔의 꽃이 피어나는데 흙의 산성도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진다. 

파란색에서 연분홍까지 다양한 색깔의 꽃이 피어나는데, 꽃이 피었을 때 좋아하는 색깔의 꽃을 핀 수국을 갖다 심어도 흙에 따라 다른 빛으로 피어나는 것이다.



나는 산수국 중에서도 헛꽃을 가장 좋아한다.

참꽃은 아니지만 화사하고, 추운 겨울에도 여전히 헛꽃은 꽃 모양을 잃지 않고 새봄이 와서 온전히 수국이 초록의 잎으로 갈아입을 때까지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꽃이 귀한 시간에 햇살에 찬란하게 빛나는 수국의 헛꽃,
그것은 환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비밀정원에 심긴 산수국에서 찬란한 헛꽃을 보며 미세먼지로 탁해진 마음을 맑게 닦는다.

그를 통해서 가는 것과 오는 것의 신비를 본다.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는 법이고, 자연에서는 가는 것과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람들처럼 오든 가든 그렇게 요란 벅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만난 산수굳의 헛꽃과 새순


며칠 전 산수국을 퍼트릴 요량으로 줄기를 잘라 분에도 심고 비밀정원 습기가 제법 많다고 여겨지는 곳에도 심었다. 전지 된 나뭇가지들은 두 개의 줄기를 내는데 산수국도 다르지 않았다. 잘린 가지 아래의 꽃눈에서는 자르지 않는 가지보다 실한 새순이 두 개 올라왔다.


그때에도 헛꽃은 저렇게 피어있었는데, 그 시간에 햇살이 없었는지 아니면 관심 밖이었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리는 날 아침, 뿌연 아침인데도 봄햇살의 기운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산수국의 헛꽃의 잎맥을 드러나게 한다.


한 가지에서 가는 것과 오는 것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새순밖에 올리지 않는 산수국, 그러나 이미 내 안에서는 꽃이 피어났다.

그들의 피어날 모습을 상상하며 그들을 바라볼 비밀 정원에서의  시간들은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피어나면서 겪을 어려움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며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서 나는 또한 삶의 힘을 얻을 것이다.


오늘은 가고 옴에 관한 것이다.

갈 때 잘 가고 올 때 잘 오는 삶, 가고 옴에서 자유로운 삶, 

이제 나에게 분명한 것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산수국의 참꽃


오는 이들의 세상 일터이니 그들이 주인 되어 살아가도록 한 편으로 조용히 비켜서 지켜봐 주는 것도 하나의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싶다. 살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영원히 죽지 않을 것같이 살아가는 것은 보기에도 그리 좋지 않다.


허긴,
 가는 것,
죽음이라는 것도 새로운 시작인데 거부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냥 덤덤히 맞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비밀정원 3월 27일의 이야기 / 오늘 사용된 사진들은 포토샵을 제외하고는 이전에 찍었던 사진들입니다.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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