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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pr 04. 2018

앵두

# 앵두 같은 입술, 앵두꽃을 보셨나요?


봄꽃들이 피어나는 순서를 잊은 듯하다.


매화와 산수유가 피어나는 가 싶었는데 한 주간 사이에 진달래, 개나리, 벚꽃, 목련이 동시에 피었다.

이렇게 꽃들이 피어나는 순서를 잃어버린 이유는 그들의 생태 시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뜻한다. 

꽃 피는 순서가 뭐 그리 대수라고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순서대로 피어나야 할 꽃들이 동시에 피었다지면 곧 겨울잠에서 깨어날 곤충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꽃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곤충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피어난 꽃들은 풍매화가 아니라면 수정을 하지 못해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 


'비밀 정원' 한편에 있는 앵두나무에도 이른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앵두꽃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녀(앵두 같은 입술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녀가 좋을 것 같다.)가 뿌리내린 곳은 꽃을 피우고 자라나기 어려운 곳이었다.


제법 큰 개복숭아나무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로 그늘 아래서 자라야 하는 것도 모자라, 환삼덩굴이 그녀를 휘감았다. 게다가 일부는 텃밭으로 사용되던 비밀 정원에서 키우던 호박 덩굴까지 가세해서 앵두나무를 뒤덮었으니 앵두가 제대로 열릴 리가 없었다.


앵두 열매


그리하여 제법 나무는 오래되었으나 앵두는 작은 종이컵 하나를 채우지 못했고, 맛도 그렁저렁해서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부터 비밀 정원을 가꾸면서 앵두나무 주변의 잡목들도 베어내고 그를 괴롭히고 있던 것들을 제거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앵두꽃이 다닥다닥 피어났다.

당연한 일이지만, 다닥다닥 열린 앵두보다도 더 많은 꽃들이 피었다. 

한 가지 우려는 아직 곤충들이 다 깨어나지 못했는데 수정을 하지 못하고 꽃이 다 떨어지면 어쩌나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앵두나무의 열매를 기대한다.


비밀 정원 한 켠의 앵두나무


요 며칠, 비밀 정원 한편에 텃밭을 만들었다.

그간 방치되어 딱딱해진 정원은 돌이 많았다. 돌산이고, 돌밭이었는가 보다.

돌을 다 골라낼 수는 없는 일이지만, 골라내는 만큼 옥토가 될 것이라 생각하며 돌을 골라냈다. 


그리고 상추씨 여러 종류와 겨자씨, 얼갈이 무와 배추를 심었다.

상추씨는 무슨 종류가 그리도 많은지 무슨무슨 '치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상추 잎이 치마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가 싶다.


크진 않지만, 우리 식구가 다 먹지 못할 만큼의 양이 나올 것이다.

지난해,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음에도 풍성했는데 올해는 그래도 조금 더 신경 쓰고 있으니 더 많은 수확을 기대한다. 이렇게 비밀 정원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텃밭을 겸한 비밀 정원으로.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데 잔뜩 날씨가 흐렸다.

비가 왔으면 했는데, 밤새 단비가 내렸다. 파종 뒤 하늘로 부터의 단비,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 2018년 4월 3일, 제주 4.3 항쟁 70주년을 맞이한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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