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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pr 15. 2018

수선화

# 키 작은 수선화가 이토록 당당하게  피어나다니


제법 쌀쌀한 봄날이 이어지곤 있지만, 잦은 비에 가물지 않아 밭은 촉촉하다.

씨앗을 뿌린 날 밤, 비가 내려서 너무 좋아했는데 봄비가 장맛비처럼 지루하게 내려서 혹시라도 씨앗들이 녹아버리지 않나 걱정했다. 게다가 '꽃샘추위'는 걱정에 근심을 더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씨앗의 힘을 믿었다.


얼가리배추와 무우



씨앗을 뿌리고 일주일 여가 지나자 새싹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올라오기 시작한 새싹은 하루가 다르게 컸고, 머지않아 바쁘게 솎아 먹어야만 할 것이다.

얼가리 배추와 무, 이런저런 종류의 상추, 겨자 등의 새싹이 실하게 올라왔고, 들깨 새싹도 질세라 올라왔다. 특별히 들깨는 노지에서 겨울을 난 씨앗들인 데다가, 밭을 가꾸느라 뒤엎었기에 더 의미가 깊다.


생명의 강인함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낀다.


비밀정원에서 꽃을 피운 수선화


그런데 정원 한편에 수선화가 피었다.

맨 처음엔 누가 수선화 꽃을 꺾어다가 버린 줄 알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에 무슨 제주도에서나 보았던 수선화가 있을 리가 없었다. 마침 지난 월요일 제주도 오설록에서 탐스렇게 피어난 수선화를 만나 사진으로 담기까지 했는데, 그 수선화가 서울에 난데없이 무슨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가만 보니, 꺾인 수선화가 아니라 키가 작아서 그렇지 이곳에서 자란 수선화다.

추워서 줄기를 길게 올리지 못하고 꽃을 피웠던 것이다. 게다가 제법 굵은 비에 흙도 튀고....


향기는?
애써 엎드리다시피 코를 대어보니 제주도의 수선화보다도 훨씬 더 향기가 깊었다.


제주의 수선화 홑꽃 -금잔옥대
제주의 수선화 - 겹꽃


사실, 제주에 살 적에는 금잔옥대로 불리는 홑꽃 수선화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젠 겹꽃이라도 황송할 뿐이다. 지난해, 수선화 타령을 했더니만 지인 한 분이 구근을 가져다주셨는데 심어놓고는 깜빡했던 것이다. 


그렇게 잊혀서 일 년, 그리고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겨울,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 요 며칠, 그 모든 아픈 순간들을 이겨내고 키 작은 수선화가 피어났다. 그러니 이 꽃이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는가?


서울의 날씨는 사계가 합쳐진 듯한 나날들이다.

봄은 이미 여름을 향해서 가는 듯하고, 여름인듯하다가 겨울인듯하고, 꽃들은 한꺼번에 피어나 봄을 만끽하려던 걸음을 당황스럽게 한다.


명자나무 -남산
라일락
조팝나무
목련



나의 비밀 정원에도 봄이 완연하니 서울 하늘 또 다른 곳은 어떨까 싶어 집 근처의 남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갖가지 꽃들이 피어났고, 이미 지는 꽃들과 마지막 한 때를 빛내고 있는 꽃들을 만났다. 이렇게 봄은 오는 것인가 싶다.


그리하여도 단연 오늘의 주인공은 키 작은 수선화다.

키가 작아도 어찌 그리 향기가 깊을 수가 있으며, 비교하지 않고 피어나는지, 대견스러울 뿐이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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