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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n 27. 2019

시편 묵상 - 시편 5편

악을 원수 보듯이

 

시편사색

선하신 야훼 악을 미워하시고 흉폭한 무리들 끊어버리시니

소인배들 주 앞에서 어찌 오래 버티겠습니까?

거룩한 그 이름 받드는 이들 주님의 평강으로 덮어주소서.


개역성경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메시지

허풍 떠는 자들을 바닥에 고꾸라뜨리시고

이간질하는 자들을 보시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십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찾는 이들을 환영하시고,

기쁨으로 단장해 주시는 분으로 이름 높습니다.

You are famous, GOD, for welcoming God-seekers, for decking us out in delight.


오경웅은 시편 5편의 제목을 ‘疾惡如’라 붙였다.

‘악을 원수 보듯이 한다’는 뜻이다.

아침마다 깨어 기도하는 시인(다윗)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을 미워하시고 마침내는 끊어버리신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의 교활함과 사악함과 진실이 없는 번들거리는 말로 깨어있는 자들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한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악한 자들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에 하나님을 의지한다. 깨어있는 영혼만이 악의 실체를 알지만, 그 실체를 안다고 해서 그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시인을 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곧 악을 미워하는 것이요, 물들지 않는 것이요, 머물지 않는 것이다. 그 일은 자의적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또한, <시편사색>에서는 하나님은 악인 그 자체를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행하는 악을 미워하시는 것임을 밝힌다. 악인이 가진 악이 나에게도 있고, 내 안에 있는 선이 악인에게도 있다는 것, 그것은 이웃사랑과 원수사랑의 근거가 된다.



<개역성경>은 좀 더 분명하게 악인의 실체를 밝힌다.

‘오만한 자, 행악자, 거짓말하는 자,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가 시인의 원수들이다.

우리 안에 이런 습성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모든 인생의 한계라고 자위하며 합리화할 것인가? 우리 안에 있는 한계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그들을 하나님은 의인으로 여겨주시어 복을 주시고 지켜주시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내어놓는 시간, 그 시간이 시인에게는 ‘아침 기도시간’이요, ‘성전에서 예배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기도하고 예배하면서, 악의 실체를 분명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 구조적인 악의 실체를 보는 것을 포함한다. 동시에 그 사회구조 안에 살면서 내재화된 자기 안에 들어있는 악의 실체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악이든지 자각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방법을 시인은 ‘주께 피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메시지>는 다소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시인은 아침마다 주님의 도움을 요청한다. 자신의 삶을 아침마다 주님 앞에 내어놓고 주님의 임재를 기원한다.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악과 상종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임재를 기원하며 자신의 삶을 내어놓은 행위는 모든 악에서 떠나길 바라는 시인의 간절한 바람이다.

주님 앞에 펼쳐 놓은 자신의 삶은 악인의 삶을 닮았다. 그리하여 주님을 만날 수 없음을 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피하니 하나님께서 그를 맞이해 주신다. 은혜다.


그리하여 시인은 7절에서 “그런데 나를 이렇게 맞아 주시다니요!” 감격하는 것이다.

예배, 그것은 악하여 하나님과 상종하지 못할 나를 맞아주시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은혜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찾은 이들을 하나님은 기꺼이 두 팔을 벌려 환영하신다. 환영하실 뿐 아니라, 손수 단장해주셔서 빛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예배 공동체는 의인들이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그렇게 큰 은혜를 누렸음에도 ‘악을 원수 보듯’ 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회개하지 않으며, 삶의 변화가 없다면 ‘배은망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뭘, 바라는가?

하나님과 타인이 당신에게 무얼 더 베풀어주길 바라는가?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도록 받지 않았는가?

그저 우리는 무릎 꿇고 그분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분은 우리를 환영하시고 기쁨으로 단장해 주시는 분이시니 이름 높으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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