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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y 27. 2020

사랑의 레카토와 스타카토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위기 20:26)       


    

레가토는 음악용어로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라는 부호입니다.

이에 반해 스타카토는 주어진 음을 전부 연주하지 말고, 반만 끊어서 연주하라는 부호입니다.

레카토가 부드럽게 연결하여 음악의 미를 살린다면, 스타카토는 강조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하게 하면서 음악을 선명하게 합니다. 둘 다, 의미 있는 음악용어입니다.   

  

우리의 삶도 레가토와 스타카토가 잘 어우러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랑의 레가토와 스타카토’를 적절하게 삶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먼저 사랑의 레가토입니다.


나는 부드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누군가 사이에서 연결지어주는 삶을 살아가는지 묵상합니다. 생명의 본질은 연결이요, 관계입니다. 특히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이웃사랑은 필수불가결한 것이요, 이웃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이웃은 ‘인간’이라는 종(種)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불어 타자와 관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사랑의 레가토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스타카토입니다.

스타카토는 주어진 음표의 절반만 연주하여, 음과 음 사이를 분명하게 구분지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단절이 아니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스타카토를 통해서  ‘에덴의 동쪽’에 살지만, 영원한 나라에 속하는 구별 혹은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삶의 상징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중용(中庸)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용의 삶은 ‘이것과 저것’이 분명하고, 이것을 취하든 저것을 취하든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교회는 이런 세상에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COVID-19능 이것을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왜,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스타카토의 삶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레가토가 아니라, 그냥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이 세상이 아름답게 연주되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아니, 늦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향점은 분명해야 합니다.

사랑의 레가토와 스타카토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연주하고, 그로인해 우리가 가는 곳마다 생명이 피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을 아름답고, 간결하게 연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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