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최선과 인간의 최선이 만나는 지점
목단은 시절을 따라 피어나고, 다육이는 꽃을 피우고, 무가 싹을 낸다.
생명 있는 것들은 마침내 자신을 피워낸다.
그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들으면 말하지 않을 수 없고,
말은 곧 삶이니, 예수님이 귀머거리와 벙어리를 고친 기적을 육체적인 치유의 기적으로만 폄하하지 말일이다.
기적은 듣고자 하는 자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법이다.
새벽에 묵상하며 읽은 김기석 목사의 책에,
"하나님의 최선과 인간의 최선이 만나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라는 주옥같은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하나님은 늘 최선을 다하고 계신데, 인간은 마음이 팔려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
'COVID-19'를 통해서 수없이 많은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과연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얼마나 듣고 사는가?
작년, 교우들과 강릉으로 봄나들이 간 길에 '오죽헌'을 들렀다.
그곳엔 목단이 한창이었는데, 목단과 모란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그때서야 알았다.
목단은 나무처럼 가지가 남아 겨울을 나고 피어나는 것이고, 모란은 이른 봄에 새싹이 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같은 꽃의 다른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자연의 변화를 보면서 하나님은 늘 최선을 다하고 계심을 본다.
늘, 문제는 인간에게 있었던 것이다. 세상사에 시달려 마음을 뺏기고 살아가다 보니 자연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살아간다.
'COVID-19'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간 인간 중심으로 살아왔던 인간의 교만함을 꾸짖는 하나님의 생생한 말씀이었다.
누구도 "듣지 못했다! 고 항변할 수 없도록,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여전히, 듣고자 하는 이만 듣는다.
'덩굴해란초'라는 꽃이다.
본래 해란초는 노랗고 큰데, 덩굴해란초는 꽃 모양만 닮았을 뿐 작고, 차라리 주름잎 꽃을 닮았다.
인천에 덩굴해란초로 유명한 곳이 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멀리 어디선가 배를 타고 연안부두를 통해 들어와 퍼지기 시작한 것일 터이다.
그리고 나같이 유별난 사람 때문에 서울 하늘에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씨앗을 얻어 뿌렸는데, 무성하다 못해 풍성하고, 이른 봄부터 덩굴 해란초 보는 재미로 살았다.
혹시나, 유해식물이 아닐까 걱정도 된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지구 상에 인간만큼 유해한 종이 어디에 있는가?
'COVID-19'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그럼에도 끝까지 희망을 붙잡고 살아가는 존재도 인간이니, 사람이란 참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인간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신을 이해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으니, 신이 곡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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