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陳腐)’라는 말은, 본래 ‘썩은 고기를 자랑하는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고기를 맛본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귀하게 얻은 고기를 자랑하고 싶어 한 사람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 고기의 귀함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는 점점 썩기 시작했고, 악취가 퍼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그 고기를 내놓으며 자랑했습니다.
이미 썩은 냄새에 익숙해져, 고기가 상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여전히 사람들이 자신의 고기를 부러워할 것이라고 믿으며 썩은 고깃덩이를 자랑했습니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이미 가치가 사라진 것을 여전히 내세우는 사람을 '진부한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진부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사유(思惟)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손에 쥔 정(釘)과 망치로,
내가 의식하든 못하든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낡은 사고방식을 두드리고 부수는 일입니다.
삶에 들러붙은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고정관념과 자기 고집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
그것이 바로 사유입니다.
사유하는 사람만이 자기 삶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유는 어떻게 시작될까요?
사유는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하루 동안 내 마음을 스쳐 간 생각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
나의 분노와 기쁨, 서운함과 기대 속에 숨은 욕망의 뿌리를 살펴보는 것,
그것이 사유의 첫걸음입니다.
사유는 자신을 부수는 작업이자, 동시에 자신을 다시 세우는 작업입니다.
삶은 끊임없이 썩어가는 것들 사이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을 찾아내는 여정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하는 말과 행동, 익숙한 감정과 편견들을 조용히 바라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믿어온 ‘당연함’이 사실은 낡고 무너진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새로움은 바로 그 깨달음 위에서 피어납니다.
허물을 벗고 새살이 돋아나듯, 진부함을 걷어낸 자리마다 새로움이 자라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익숙함에 마취되지 않고 매일 깨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존재로 남기 위해서는,
‘사유하는 삶’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부함을 넘어 새로움으로 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