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

위로에 대하여(On Comfort)

침묵의 위로

by 김민수


우리는 너무 쉽게 위로한다.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질 거야."


말은 부드럽고 따뜻해 보이지만, 때때로 그 말들은 칼처럼 사람을 찌른다.

물론, 진심을 담아 위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그 위로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위로'라는 단어는 고통을 가볍게 만들려는 욕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별일 아니야,"

"누구나 다 그런 거야."


이런 말 앞에서, 고통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된다.

아픈 마음은 더 이상 머물 곳을 잃고, 사람은 자신의 슬픔마저 숨기게 된다.

그래서 위로는, 고립을 만든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고통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없다.

또 어떤 위로는 감당할 수 없는 긍정을 강요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힘든 일에도 다 이유가 있어."


그 말들은 애써 고개를 드는 사람에게 더 무거운 짐을 얹는다.

슬퍼할 자유도, 분노할 자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파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만든다.

결국 사람은 자신을 버텨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조용히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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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무너질 권리가 필요하다.

눈물을 참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삶에는 꼭 필요하다.

더 깊은 문제도 있다.


위로라는 이름으로,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일이다.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어."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어."


이런 말들은 고통의 복잡한 맥락을 지워버린다.

사회적 불평등, 제도의 문제,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들은 사라지고,

고통의 원인은 오롯이 개인의 부족함으로 돌려진다.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더 높이 뛰어!"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가끔은 위로마저 관계의 도구가 된다.

누군가는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자리를 갖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위치를 지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서열을 만들고, 경계를 그어버린다.

진짜 위로는 같은 자리에서 함께 숨 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너무 쉽게 답하지 않는 것.
너무 쉽게 다독이지 않는 것.
너무 쉽게 해답을 주지 않는 것.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곁에 조용히 함께 있는 것.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지금 많이 힘들지"라고 말해주는 것.


사람은 스스로 일어설 때 비로소 다시 걸을 수 있다.

그때까지 곁을 지키는 것, 이것이 진짜 위로 아닐까.


가장 깊은 위로는 말이 아니다.

말없이 곁에 있는 것, 함께 아파하는 것, 함께 조용히 견디는 것.

위로는, 고통 속에서 눈물 흘리는 이 곁에 서있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침묵의 위로, 그것이 참된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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