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

공감에 대하여 1(On Compassion)

by 김민수


성 프란체스코(1182–1226)는 교회 역사에서 가장 그리스도와 닮은 사람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는 20대 초반, 예수님의 환시를 경험한 후 세상의 부와 영예를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택했습니다.

프란체스코는 새들과 짐승, 달과 별, 심지어 죽음 속에서도 하나님의 숨결을 느꼈으며, 자신이 ‘가난이라는 여인’이라 부른 존재와 깊이 동행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자신을 철저히 동일시하며,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껴안고 살았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프란체스코는 생의 마지막에 그리스도의 상처(stigmata)를 몸에 지녔다고 합니다.

손과 발, 옆구리에 새겨진 그 흔적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과 사랑에 대한 깊은 공감의 몸짓이었습니다.


요즘 제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단어는 ‘compassion’, 곧 '공감'입니다.


41747deb-add2-4382-a3ec-9eb918912474.png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흔히 ‘수난’(passion)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십자가 사건을 다룬 복음서의 마지막 장들을 ‘수난 설화’(Passion Narrative)라 부르듯,

passion은 고통과 슬픔의 정수를 담은 단어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passion은 동시에 열정을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의미를 떠올리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비극적인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타오르는 열정의 표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고, 인간의 삶과 고통을 친히 살아내셨습니다.

그분의 공감은 단순한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삶의 전 존재를 걸고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성육신적 연대’였습니다.


공감한다는 것은 곁에 선다는 것입니다.

대상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의 자리에 서고, 그의 상처에 손을 얹는 행위입니다.


프란체스코는 들풀과 짐승들과 하나 되어, 그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들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가난한 자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했습니다.


797bcbb6-dea9-4d7c-91b5-45e4dad0c302.png


우리는 지금, 공감의 능력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손톱 밑의 가벼운 통증같은 자기의 아픔에는 세상이 무너질 듯 비명을 지릅니다.

하지만, 타인의 죽음과도 같은 아픔은 외면하고 눈을 감습니다.


공감이 사라지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아파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단절되고, 생명과 생명 사이가 무너집니다.

인간은 결국 자신의 고통조차 외면하게 됩니다.


공감은 곧 사랑의 시작입니다.

공감할 수 있을 때, 우리 마음에 타인을 향한 열정(passion)이 되살아납니다.

그 열정은 머물지 않고, 기도하게 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가난’이라는 이름의 굴레에 갇혀 살아가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 안에 되살아납니다.

공감은 거룩한 침묵에서 시작되어, 사랑의 실천으로 열매 맺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쉼에 대하여(On 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