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

흑백사진에 대하여(On B&W Photo)

by 김민수


흑백사진을 처음 좋아하게 된 건, 오래된 사진첩에서 꺼낸 한 장의 가족사진 때문이었다.

빛이 바래고 가장자리가 닳아 있었지만, 그 사진은 눈물겹도록 생생했다.

웃고 있는 얼굴도,

묵묵히 서 있는 그림자도,

모두 말없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알게 되었다.

흑백사진은 색을 지운 것이 아니라, 색 너머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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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색이 있다.

자주빛 그리움, 짙은 회한, 희미한 위로 같은 감정의 색들이 숨 쉬고 있다.

그래서 흑백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색을 넘어서 상상을 일으킨다.


사진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 안에 이야기를 그려 넣는다.

어떤 날은 흐린 기억으로, 또 어떤 날은 따뜻한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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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은 대립하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를 감싸 안고 조화를 이룰 때, 그 사진은 생명을 얻는다.


흑과 백 사이의 수많은 회색,

그 미묘한 농담(濃淡)이야말로 흑백사진의 진짜 언어다.

삶이 선명한 흑과 백으로 나뉠 수 없듯이, 사진도 그러하다.


슬픔과 기쁨이 섞인 표정,

빛이 깃든 어둠,

어둠 속에 반짝이는 평안.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흑백은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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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가 현실을 보여준다면, 흑백은 그 현실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때로는 더 진실하게,

때로는 더 고요하게.


화려함이 주는 시각적인 쾌락은 없지만, 대신 그곳엔 깊이가 있다.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기보단,

천천히 이끌고 오래 머물게 하는 힘.

그것이 흑백사진의 매력이다.

말하자면, 흑백은 시선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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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은 침묵의 예술이다.

설명하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그저 담담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침묵이 주는 울림은 크다.

언어보다 더 강하게 전해지는 감정. 그

것은 마치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처럼, 고요하지만 압도적인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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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백사진을 사랑한다.

그 안에는 지나간 시간의 냄새가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이 있으며,

말 없이 건네는 위로가 있다.


빛과 어둠이 함께 만든 풍경, 색은 없지만 오히려 더 풍요로운 세계.

그 속에서 나는 본다.

세상의 소음 너머에 있는 어떤 진실을.

그리고 사진이 품고 있는 나의 자화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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