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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N

느림에 대하여(On Slowness)

느림의 철학을 회복하자

by 김민수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간다.

숨을 고를 새도 없이 흘러가는 하루, 사람들은 서로를 재촉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빨리빨리’는 한국 사회의 상징 같은 말이 되었고,

그 말 속엔 효율과 경쟁, 성과라는 시대의 강박이 숨어 있다.

마치 조금만 느려져도 세상에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 삶 전체를 조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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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삶은 과연 그렇게 빠르게만 살아야 하는 걸까?

밥을 맛나게 지으려면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불을 끄고 나서도 밥알 속에 스며드는 사이의 여백이 있어야 제대로 된 밥이 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에는 뜸들이는 시간이 없다.

인스턴트 음식이 우리의 식탁을 바꾸었듯,

우리의 생각과 감정, 관계마저도 기다림 없는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기다림은 미덕이 아니라 비효율로 여겨지고, 여백은 낭비로 오해된다.


그래서 나는 ‘느림’에 대해 다시 말하고 싶다.
느림은 게으름이 아니다.
느림은 타인을 배려하는 속도이며, 자기 삶의 리듬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종종 달팽이를 느림의 상징으로 말하지만,

사실 달팽이는 결코 게으르지도, 우유부단하지도 않다.

자신의 방식으로, 꾸준히, 멈추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아무리 빨라도 엉뚱한 방향이라면 그 걸음은 헛수고가 되고 만다.

반대로, 느릴지라도 방향이 분명하다면 그 걸음은 결국 목적지에 닿는다.


각자에게는 고유한 속도가 있다. 누군가는 빠르고, 누군가는 느리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한 가지 기준으로만 사람들을 줄 세우고, 경쟁시키고, 평가한다.

그래서 더디게 걷는 이들은 자주 ‘무능’하다는 낙인을 받거나, 스스로 자책하며 뒤처진 삶이라 여긴다.


그러나 느림은 결코 뒤처짐이 아니다.

느리게 걷는 이들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주변을 살피고,

멈춰선 자리에서 삶의 풍경을 더 깊이 바라볼 수 있다.

뻘리 걷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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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걷는 일은 그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빠르게 걷는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느린 사람과 함께 걷기 위해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사랑의 언어다.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함께 걸어주느냐는 사실이다.



속도를 중시하는 문화는 주로 삶의 표층, 겉모습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느림은 삶의 심층, 그 깊은 속으로 내려가도록 우리를 이끈다.
천천히 걸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내면의 진실, 타인의 고통, 일상의 신비와 마주하게 된다.
느릿느릿의 걸음은 ‘보이는 것 너머’를 향한 사유이며, 표면을 뚫고 들어가는 성찰의 길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멈춰 서야 할 때가 있다.
지쳐서, 혹은 되돌아보기 위해.
그 멈춤 속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빨리 걷느라 지나쳤던 사람의 표정,

나뭇잎의 흔들림,

하늘의 색깔,

그리고 내면의 고요한 소리.
그러므로 느림은 삶의 심층을 들여다보게 하는 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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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짜 풍경은,

빠르게 달릴 때가 아니라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너는 왜 이렇게 느리니?’라는 말 대신, ‘네 속도는 이렇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서로의 리듬을 존중하며 함께 걷는 사회, 멈춤과 뜸들이기를 존중하는 삶.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느림의 철학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고,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며,
지금 여기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그 순간조차도 귀한 삶의 일부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그럼에도 우리의 걸음은 지금도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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