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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N

오늘에 대하여(On Today)

by 김민수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오랜만에 내리는 단비다.

마른 땅이 목을 축이고,

화분에서 조용히 갈증을 견디고 있던 꽃들도 촉촉이 젖으며 고개를 든다.

빗방울은 소란스럽지 않게 대지를 적시고, 그 적요한 울림은 어느새 내 마음에도 스며든다.


이런 날이면 생각한다.

‘사실, 매일이 이런 축복의 날이 아닐까?’


비가 내려 생명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는 일,

꽃잎 하나가 환하게 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리고 그런 것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마음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은혜요,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언제나 한결같지 않다.

누군가에겐 오늘이 기다리던 평화의 날일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의 날이기도 하다.

햇살 가득한 날도 있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도 있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채색의 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날은 우리에게 동일한 이름으로 다가온다.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오늘’은 늘 우리 곁에 있지만,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어제는 이미 흘러가버렸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오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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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자주 잊는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어제를 잊는 것도, 내일을 앞당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오늘을 산다는 것은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삶이 뜻대로 풀릴 때도 있고,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날이라고 할지라도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아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어진 하루를 감사히 여기는 마음이 아닐까?


감사는 일상의 무늬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실이다.

감사는 비 오는 날에도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일 수 있게 하고,

혼자 있는 시간에도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며,

뜻밖의 아픔 속에서도 삶을 원망하지 않게 만든다.


감사는 상황을 바꾸지 않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꿔놓는다.

감사의 눈으로 오늘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감사가 보이고,

지나쳤던 은혜가 다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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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비 오는 날의 따뜻한 커피 한 잔,

문득 들려오는 누군가의 안부 인사,

길가의 풀잎에서 튀는 작은 물방울까지도 삶의 선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오늘을 산다는 것은

감사를 배우는 연습이자,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을 부드럽게 끌어안는 일이다.


어떤 날은 우리가 살아내고,

또 어떤 날은 우리를 살려내기도 한다.

어떤 날은 우리가 이끌고 가고, 또 어떤 날은 오늘이 우리를 붙잡아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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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루하루를 건너오다 보면,

지나간 시간의 강은 우리가 흘려보낸 감사의 말들, 고요한 기도들,

그리고 조용한 인내의 흔적들은 시간의 강의 윤슬이 된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을 하루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하루를 감사히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이 하루 속에서 한 사람의 삶을 진심으로 살아내는 일이다.


비 내리는 아침,

화분의 꽃 한 송이가 젖은 잎을 들어 하늘을 향해 웃고 있다.

아마 그것이 오늘을 살아내는 가장 아름다운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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