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가운데 더욱 빛나는 등불처럼
평화는 언제 오는가.
사람들은 말한다.
전쟁이 끝난 뒤,
분쟁이 멎은 후,
소란이 가라앉은 다음에 평화가 온다고.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그런 것이 아니다.
평화는
언제나 소란의 한가운데에서,
불확실성과 불안의 한가운데에서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하게 자라난다.
폭풍이 몰아치는 어느 밤을 상상해보자.
비는 쏟아지고, 바람은 창을 흔들며, 사방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속에서 누군가 작은 등불 하나를 켠다.
그 빛은 멀리까지 닿지 못하지만, 어둠을 밝힌다.
바로 그 때 우리는 느낀다.
“아, 저것이 평화다.”
평화는 고요나 정적이 아니다.
평화는 두려움과 불안을 껴안고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중심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고요한 확신이라고 부르고,
또 누군가는 흔들림 속의 균형이라고 부른다.
중요한 건,
평화의 시작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태도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어떤 이들은 갈등을 피해 조용히 물러서는 삶을 평화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평화는 아닐 수 있다.
진짜 평화는 다툼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화의 사람은 세상을 이상향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현실의 부조리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분열과 증오가 얼마나 빠르게 번지는지 알고 있고,
한 마디의 말이 어떻게 폭력을 부를 수 있는지 안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말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저 온유한 사람이 아니라, 단단한 사람이다.
세상은 평화를 말하지만,
평화를 행동으로 실현하는 사람은 드물다.
평화를 원한다 말하면서도,
우리는 쉽게 타인을 정죄하고, 다름을 위협으로 느낀다.
목소리를 높이는 자가 이긴다는 사회 속에서, 낮은 목소리는 종종 무시당한다.
그러나 평화는 낮은 곳에서 피어난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이렇다.
그는 먼저 귀를 기울일 줄 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 안다.
그는 타인의 입장과 사정을 헤아릴 줄 안다.
무엇보다,
그는 자기 안의 분노와 조급함, 두려움과 불안을 다스릴 줄 안다.
어떤 평화는 말할 수 없이 작고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루 동안의 평온함,
따뜻한 차 한 잔,
서로를 향한 짧은 인사,
축복을 비는 한 마디 인사,
말 없이 건네는 따뜻한 웃음,
이 작은 것들이 모여 평화의 삶을 만들어간다.
이들은
폭풍 속의 등불처럼, 작지만 확실한 평화를 만들어간다.
누구나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를 만드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고 어렵다.
평화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언어를 조율해야 하고,
평화를 향해 걷기 위해서는 자기가 걷는 방향을 다시 살펴야 하고,
자기 안의 작은 전쟁을 멈추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안에서,
말과 행동 사이에서,
의도와 결과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스스로 조율하는 데서 평화는 시작된다.
그래서 어쩌면 평화는
어떤 이상이나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연습이다.
고요를 배우는 연습,
경청하는 연습,
멈추고 돌아보는 연습.
그러므로 날마다 연습하지 않으면 쉽게 잊히고, 쉽게 사라진다.
그렇다.
평화는 연습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꾸준히 연습한다면,
그것은 삶의 체온이 되고, 어느 날 누군가의 어둠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갈등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말은 많지만 대화는 없고,
지식은 넘쳐나지만 지헤가 없다.
이런 시대에 평화를 말한다는 것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등불 하나로 어두은 세상을 다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등불을 든 사람의 빛은 또다른 등불 든 이를 부른다.
그 빛이 모이고 모여 아름다운 평화의 빛이 되는 것이다.
그 불빛을 따라 걸어오는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렇게 평화의 등불은 이어진다.
나는 어떤 평화를 만들고 있는가.
나는 지금, 등불을 켜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