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alogue

저마다의 삶의 속도가 있다

#02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by 김민수

느릿느릿, Slow Life


구절초를 찾은 달팽이

경쟁사회는 '빨리빨리'를 강요한다.

'빨리빨리'는 보통의 속도, 제 삶의 속도보다 빠른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남보다 빠른 것을 의미하고, 결국에는 누구보다도 빠른 것을 의미한다.


뱃살을 빼는 운동 중에서는 빠른 걷기가 가장 좋다고 한다.

빠른 걸음으로 등줄기에 땀이 날 정도로 걸어주면, 지방이 분해되면서 뱃살이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삶을 빨리빨리 살아가면 행복이 분해되어 절망에 이른다.


고마리

자연을 보라.

자연은 서두르지 않고 오로지 제 때에 피어난다.

자기만의 걸음으로 새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리고, 꽃망울을 올리고, 마침내 꽃을 피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사육된 것들(예: 식용으로 키워지는 닭)은 그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불행한가?

사람도 자기의 속도를 잃어버리고 빨리빨리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맘몬(자본)에 의해 사육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달팽이

느릿느릿의 상징인 달팽이, 그는 나의 스승이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결과 그는 결코 느리지 않았으며, 제 삶의 필요한 만큼의 속도로만 걸었으며, 때론 자신이 붙잡고 있던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민첩함을 가지고 있었다.


느릿느릿의 장점은 숨차지 않다는 것, 그래서 평점심을 잃지 않고 꾸준히 제 길을 갈 수 있다.

느릿느릿의 장점은 천천히 본다는 것, 그래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때는 보지 못하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많이, 더 깊이 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더 많이, 더 깊이는 물론 맘몬의 사회가 요구하는 일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동해에서-장노출 사진

당신의 삶의 속도는 얼마인가?

혹시 달려가다 선회하고자 해도 선회할 수 없는 속도라면 당신은 지금 잘못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북한산 자락에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사무실의 한쪽면이 커다란 통유리였는데 간혹 산새들이 날아와 부닥쳐서 치명상을 당했다. 어떤 새는 유리창에 도장을 찍듯 흔적을 남기고 죽기도 했다. 이후, 유리에 선팅을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새들에게 유리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 위험이다.




달팽이였다면?

아마도 달팽이는 자기의 속도로 인해 다른 물체의 부딪치는 충격으로 인한 아픔을 겪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느릿느릿의 삶은 게으른 삶을 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삶의 속도를 찾자는 것의 다른 말이다.

백령도 몽돌해안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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