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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에 대하여(On Seeds)

삶은 씨앗을 닮았다

by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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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작다.

손끝에 올리면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고, 흙 속에 떨어지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만큼 작다.

하지만 그 작음 속에 생명이 들어 있다.

나무가, 풀잎이, 곡식이, 꽃이, 그리고 숲이 그 안에 들어 있다.

씨앗은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하고, 동시에 생명이 ‘되어가는’ 과정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씨앗은 땅에 묻혀 썩어야 싹이 튼다.”

그 말은 참말처럼 들린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한 번쯤은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비유처럼 읽힌다. 하지만 농사를 지어본 이들은 말한다. “씨앗이 썩으면 죽은 거다. 싹이 나야 산 거다.” 그것은 관념이 아닌 실제의 언어다. 이 말은 비유를 넘어선 진실이다.


씨앗이 땅 속에 들어가면 본래의 모습을 잃는다.

껍질이 터지고, 안에 있는 생장이 준비된다.

그것은 일종의 파괴다.

씨앗이라는 형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하면 싹은 틀 수 없다.

그래서 썩는다는 말은 단순히 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꺼이 무너지는 것,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는 것,

기꺼이 ‘다른 존재’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흙의 품이 너무 차가웠고,

어떤 것은 빛을 받지 못했고,

어떤 것은 너무 빨리 썩었다. 그래서 ‘죽은 씨앗’도 많다.

고요히, 보이지 않게 썩어가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는 씨앗들.

그런 씨앗은 우리 삶에 무엇을 말해줄까.


삶도 그렇다.

사람들은 기다린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기를.

지금의 노력이, 아픔이, 인내가 어느 날 싹이 트듯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기를.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없고, 애쓴 만큼 무언가가 자라지 않는다.

열심히 가꿨지만, 숫자는 줄고, 기대는 식고, 바람은 거세다.

그럴 때 우리는 묻는다.

“나는 지금 썩고 있는가, 자라고 있는가?”


정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우리는 썩으며 자란다.

본래의 꿈과 모습, 기대와 환상이 조금씩 깨어지고,

그것이 부서질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로운 결심이 자라난다.

포기 같지만 포기가 아니고, 체념 같지만 체념이 아니다.

삶은 그 모호한 경계에서 비로소 생동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씨앗마다 싹이 트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씨앗은 이틀이면 새싹이 나오지만, 어떤 씨앗은 계절이 바뀌고 나서야 고개를 든다.

오랜 가뭄 끝에, 첫비가 오고 나서야 움트는 생명도 있다.

같은 밭에서 자란다고 같은 속도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금방 변화하고, 누군가는 오래도록 기다려야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아무리 썩어가는 것 같아도,

그것이 아직 싹이 트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씨앗은 땅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

자기를 무너뜨리고, 껍질을 열고, 뿌리를 뻗을 준비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는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조용하게 일어난다.


씨앗은 삶에 대해 말한다.

그 말은 단순하지 않다. ‘작지만 소중하다’는 상투적인 말이 아니다.

무너짐을 견디는 힘,

썩음을 감내하는 시간,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고요한 믿음,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에도 흙 속에 머물러 있는 용기.


씨앗은 그렇게 말 없이 말하고, 자신을 잃음으로써 자신을 살아낸다.

삶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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