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되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낭비를 두려워한다.
낭비는 손해이고, 실수이며, 후회로 연결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헛되이 흘려보낸 것’, ‘쓸모없이 소모된 것’,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이라는 인식이 낭비에 붙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낭비를 피하려 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애쓰고, 감정을 낭비하지 않으려 조심하며, 인생을 알뜰하게 살아보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삶은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어떤 시간은 목적 없이 지나가고,
어떤 관계는 이유 없이 흩어지며,
어떤 젊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그 낭비된 것들 속에서, 우리는 진짜 우리를 만나곤 한다.
젊음이 그렇다.
젊음은 절약될 수 없다.
아껴 쓸 수 없는 시간이다.
오히려 낭비되어야만 제 몫을 다하는 시기다.
실수도 하고, 방황도 하고, 실패도 하고, 돌이켜 보면 부끄럽거나 어리석은 일들이 많다.
그 모든 낭비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낭비 없이 청춘을 지나온 사람은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젊음의 시간을 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언제나 조금 과하다.
조금 더 주고,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믿는다.
결국 다치기도 하고, 외면당하기도 하고, 남는 것이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남지 않은 자리’에 남는 감정이 있다.
그것이 우리를 사람답게 만든다.
시간도 그렇다.
허투루 보낸 날이 인생에서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정해진 목적 없이 걷던 길, 그냥 앉아 있었던 오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여름.
그런 날들이 인생의 진짜 중심이 되곤 한다.
우리는 효율을 말하고, 목적을 추구하며, 결과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삶의 아름다움은 종종 그런 길에서 벗어난 우회로에서 피어난다.
‘왜 그랬을까’ 싶은 선택, ‘괜히 했던’ 시도,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만남.
그 모든 것들이 삶을 두텁게 만든다.
낭비는 소모가 아니라 시간의 깊이다.
물론 우리는 시간을 함부로 흘려보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결과로만 환산되지 않는 삶의 이치를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낭비는 실패가 아니다.
때로는 어떤 씨앗이 결실을 맺기 위해 수많은 씨앗들이 뿌려지고 사라져야 하듯,
한 번의 꽃을 위해 많은 계절이 지나가야 하듯,
삶에는 반드시 ‘사라지는 것’이 필요하다.
낭비란 아직 의미가 도착하지 않은 소모다.
그 의미는 나중에 온다.
돌아보았을 때,
그 시간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낭비를 다르게 이해하게 된다.
삶은 결국 ‘잘 쓴 시간’보다 ‘잘 사라진 시간’들이 더 깊은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
어떤 시간은,
어떤 관계는,
어떤 시절은 기꺼이 낭비되어야 한다.
그 낭비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충만한 소모의 의미를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