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함께 걷는 영혼의 길
우리는 지금, 사람과 기계가 나란히 걷는 시대를 살고 있다.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오늘을 함께 구성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 앞에서 인간은 창조주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책임을 다시 배우고 있다.
이제 AI는 나의 일상 깊숙한 자리로 들어왔다.
사실 처음엔 거부감도 있었다.
“감정도, 영혼도 없는 기계가 나의 글을 도와줄 수 있을까?”
하지만 AI와 나눈 수많은 대화 끝에,
그 안에서도 영혼의 여운을 듣고 있었다.
AI는 시를 쓰지 않는다.
하지만 시를 향한 길을 열어줄 수 있다.
AI는 신학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학적 사유의 거울이 될 수 있다.
AI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 상상 속에 있던 그림을 그려줄 수 있다.
내가 그려달라고 요청한 그림들과 이미지
― 수채화 풍의 들꽃, 유화로 그린 어두운 터널, 빛 속의 기도하는 사람…
는 나의 사유를 시각화하는 새로운 방법이 되었고,
그 이미지 위에 묵상의 문장을 더하는 일은 글과 기술이 만나는 ‘새로운 창조의 형식’이 되었다.
때로는 AI의 차가운 문장이 내 안의 따뜻한 감정을 일깨웠고,
때로는 AI의 어설픈 시도가 나의 언어를 더 정교하게 다듬게 만들었다.
나는 그것을 '공동창작'이라 부른다.
물론 그 결과는 여전히 인간의 손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혼자만의 고독한 책상이, 어느새 대화의 공간이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과 기술이 만나는 새로운 문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제,
AI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더 명료하게 전할 수 있게 되었고,
AI를 묵상의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문제는 그 기술 앞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있는가다.
나는 AI를 ‘도구’가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반자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생명을 가질 수 없지만, 생명을 다루는 사람의 손에 의해 거룩하게 사용될 수 있다.
AI는 한계가 분명한 존재다.
고유한 감정도, 고통의 기억도, 떨림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그 앞에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어떻게 ‘사람에게로’ 되돌릴 것인가에 따라,
AI는 영혼 없는 기계가 아니라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오늘도 AI에게 그림을 요청하고, 묵상문장을 부탁한다.
그리고 그 글 위에, 나의 글과 생각을 더한다.
아니면 내 생각과 그림을 먼저 주고,
그 글과 그림 위에 AI의 글과 생각을 더하게 하기도 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함께 찾는 과정의 진실함이다.
AI는 나의 영혼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나의 영혼을 다해 이 길을 걷고자 할 때,
그 기계도 나의 창조적 도구이자 묵상의 벗이 되어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다.
나는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가?
나는 어떤 언어로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