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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N

거친 손에 대하여(on weathered hands)

당신의 손도 참 고생이 많았다

by 김민수


거칠고 못생긴 손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부드럽고 곱디고운 손만으로는 생명을 지탱할 수 없다.


밥을 지어야 했고,

장작을 패야 했고,

빨래를 해야 했고,

흙을 일구고,

바다를 건넜고, 울며 돌아앉은 아이의 등을 토닥여야 했다.


그 모든 생의 굽이굽이에서, 손은 늘 앞장서거나 맨 나중에 남았다.


한때 나도 내 손이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 있다.

마디가 굵고, 주름졌고, 손가락에는 낫에 벤 상처 자국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부끄럽지 않다.

어쩌면 정반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곱디고운 손이 오히려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진다.

물론 손이 곱다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단단한 생의 흔적이 없는 손은

무엇을 쥐어본 적도, 무엇을 놓아본 적도,

무엇을 움켜쥐었다가 울며 내어준 적도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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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손은 삶의 기록이다.
시간이 새겨놓은 연대기이며,
사랑을 감당한 자의 증명서이다.
누군가를 끌어안기 위해,
무거운 짐을 대신 들기 위해,
자신의 한 끼를 건네기 위해
먼저 내밀었던 손.


삶은 부드럽지 않다.

한 사람의 인생은 생각보다 더 험하고, 더 아프다.

그러나 그 삶을 견디는 손은 언제나 아름답다.

손의 아름다움이란

피부의 질감이나 길이의 조화가 아니라,

그 손이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았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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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상에 누워서도 자식들 손을 꼭 잡고 기도해주시던 어머니의 손,

주름진 손을 부여잡고 자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아버지의 손을 기억한다.

기력이 다 빠져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고 거칠었지만,

나는 그 손에서 부드러운 생명의 힘을 느꼈고,

그 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다.


나는 흙을 만지는 농부의 손을 존경한다.

억센 노동자의 손도.

손톱 밑까지 흙이 들어 있었고,

굳은살이 박혀 주름 위에 주름이 덧대어 있는 손.

말보다 묵직한 삶을 말하고 있는 손.

나는 그들의 거친 손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내 손을 바라본다.

이 손으로 나는 글을 쓰고, 설거지를 하고, 누군가의 어깨를 토닥인다.

잘했다고 말해주고, 괜찮다고 안아주고,

때로는 나의 눈물도 훔친다.

이 손이 곱지 않아서 감사하다.

이 손이 거칠기 때문에 나는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아이의 손은 작고 부드럽다.

그 손은 아직 아무것도 쥐지 않았고, 아무것도 놓아본 적 없다.

그러나 그 손이 언젠가 사랑을 배우고,

누군가를 위해 흘릴 땀을 배우고,

기꺼이 상처 입을 줄 아는 손이 되기를 바란다.

곱디고운 손이었던 아이의 손이 거칠어지기를 바란다는 말이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거칠다는 건 수고했다는 뜻이고,

못 생겼다는 건 누군가를 대신해 고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이 손으로 살아간다.

세상의 먼지를 닦아내고,

누군가의 슬픔을 쓰다듬고,

내 하루를 무너뜨릴 걱정들을 잠시 붙들어 매며.

때때로 손마디가 아파도,

손등이 갈라져도,

이 손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거칠고 못생긴 손.

이 손이 없었다면 나는 나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당신의 손도, 참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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