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0장 -
욥은 앞 장에서 ‘존경받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 회상이 얼마나 눈부셨는지는 지금의 현실과 얼마나 대비되는가를 통해 더욱 극명해진다.
“지금은 나보다 나이 어린 것들이 나를 비웃네.
나는 그들의 아비들을 하찮게 여겨,
내 양치기 개들처럼 다루었는데.”(30:1)
그는 자신이 도와주던 이들, 자기 말을 멈추고 경청하던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비웃고, 멸시하고, 심지어 침을 뱉고 지나가는 현실을 말한다.(30:1–10 요약)
이것은 단지 명예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인간 존엄성의 붕괴요,
관계의 해체이며,
하나님의 침묵 앞에 서 있는 버려진 자의 고백이다.
“지금은 내 몸 녹아내리고,
괴로움의 나날이 나를 쥐어짜네.”(30:16)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도 깊은 상처였지만,
욥이 더 견디기 힘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말할이가 없고,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자신은 무너진 자리에 홀로 버려져 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향해 말을 건넨다.
비난이 아니라, 간구도 아니라, 그저 말한다.
그 말은 실처럼 얇고 위태롭지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실이다.
그 실은 이미 앞장(29장)에서 시작된 회상의 끝자락에 놓여 있었다.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그는 울었지만,
그 울음은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하나님을 기억하고 말하려는 삶이었다.
지금 욥은 두 번째 산을 오르고 있다.
첫 번째 산은 영광의 정점이었고,
그 이후 그는 계곡으로 굴러 떨어졌지만,
이제 절망의 골짜기에서 다시 언덕을 향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이어가려는 신앙의 여정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욥은 절망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내면의 불씨를 품는다.
욥은 슬프게 묻는다.
“"하루 살기도 힘든 사람 위해 내가 울지 않았던가요?
가난한 사람 위해 이 몸이 마음 아파하지 않았던가요?”(30:25)
그는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도 이해되지 않는 것,
즉 자신이 살아온 삶과 지금 겪는 고난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서 질문한다.
질문은 하지만, 이토록 무너진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차라리 절규한다.
주님이 나를 바람 위에 태우고 다니시며,
폭풍으로 나를 뒤흔드십니다."(30:22)
이 말은 신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려는 필사의 몸부림이다.
욥은 지금도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
말하고 있다는 것은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믿음의 잔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하나님께 항변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그에게 항변할 것인가?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변하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이다.
욥은 말한다.
“나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자리인가?”
이 말은 신학의 질문이 아니라,
신앙의 깊은 심연에서 나오는 몸부림이다.
인생이 무너질 때, 사람은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하나님을 버리거나, 하나님께 부르짖거나.
욥은 선택한다.
“나는 말하겠다.
그분이 듣지 않더라도,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나는 말함으로 지키겠다.”
조롱당하고, 버림받고, 의미 없이 고통을 겪는 것 같아도,
그 안에 여전히 꺼지지 않는 믿음의 불씨가 있다.
강인한 자는 절망 속에서도 질문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실이 된다.
욥의 말은 끝없이 이어진다.
절망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말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 가닥의 실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그 실은 때때로 손에서 미끄러지지만,
다시 잡힌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소감문에서 유년의 시절 썼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1)
한강의 문학은 ‘실’이라는 이미지로 ‘끊어졌지만 이어지는 관계’를 형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이어져 있고, 연결되어 있다.
산 자와 죽은 자도, 현재와 미래도.
그리하여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고,
산 자가 죽은 자를 위로할 수 있다.
욥의 항변은 그 실을 더듬는 행위다.
그 실은 항변의 형태로, 기도의 형태로, 때론 침묵으로 이어진다.
지금은 아무것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지만,
고통 속에 있는 자는 끊어졌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실을 잡고 있다.
욥이 여전히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는 것은
관계의 실이 아직 이어져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실은 믿음이다. 희망이고, 사랑이다.
주:
[1] 한강, 『빛과 실』, 문학과지성사, 2025, 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