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9장 - 완벽한 제물은 없다
욥은 돌아본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지금,
그는 고통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본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셨던 시절,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았던 때,
그리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였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엔 하나님이 하나님의 등불로 내 머리 위를 비추시고,
난 하나님의 빛 속에서 어둠을 지나왔네.
내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었지.”(29:2,3)
그때 그는 하나님의 빛 안에서 살았다.
자신의 삶은 공동체의 축복이었고, 자신 또한 다른 이들의 기쁨이었다.
그는 거리에서 존경받았고, 장로들은 그 앞에서 말을 멈추었으며,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들을 위로하고 살았다.(29:7–17 요약)
욥은 말한다.
“그때 나는 행복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걸 느꼈고,
내 삶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욥의 회상은,
허세와 자조의 “왕년에는”이 아니다.
고통의 터널 한가운데서도
자기 삶의 뿌리를 되묻는 이의, 깊고 조용한 기도다.
욥의 말은 자랑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에는 회복하고 싶은 삶에 대한 그리움과 의롭게 살았던 삶이 보인다.
전도서 7장 8절은 말한다.
“일을 끝낼 때가 시작할 때보다 낫고,
꾸준한 마음가짐이 뽐내는 마음가짐보다 낫지요.”
욥의 말은 과거의 명예를 자랑하는 자의 말이 아니라,
지금 무너져 내린 자리에서도 그가 살았던 삶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고백이다.
여전히 균열된 삶 속에도
그때처럼 하나님의 빛이 비출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은 지금 자신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한다.
자신의 삶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의 자세다.
이제 욥은 전반부의 인생을 지나 두 번째 산, 후반부 인생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후반부 인생’에 대해서 리처드 로어는 말한다.
“후반부 인생에서 우리는 완전치 못하고 추락하는 자기를 용서할 때 비로소 다른 사람한테도 그럴 수 있다. 영혼이 깊어지는 길은 언제나 자아의 중심이 깨어지는 자리를 통과한다.”1)
로어는 인생의 진정한 성숙은 후반부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넘어짐, 실패, 상실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은총과 지혜를 더 깊이 알게 되는 시기,
그것이 바로 ‘Falling Upward(위쪽으로 떨어지다)’이다.
욥은 상실과 실패와 깨어짐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겸손함,
연약한 자와 함께하는 연대,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정의로움을 배운다.
그의 삶은
빛을 향해 걷고,
낮은 자와 함께하며,
정의 앞에 침묵하지 않는 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심연에서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그저 과거를 돌아보며 자조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이제 그는 깨어짐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린다.
이것이 욥의 지혜다.
지혜로운 삶은 말로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삶이 곧 말이고, 삶이 곧 고백이 된다.
욥은 지혜롭게 살았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듣기를 기다리며 여전히 지혜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영혼의 태도는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 1934~2016)의 노래
‘Anthem’에 나오는 다음의 가사와도 깊이 통한다.
“Ring the bells that still can ring
Forget your perfect offering
There is a crack in everything
That's how the light gets in.”
“아직 울릴 수 있는 종을 울려라
완벽한 제물은 잊어라
모든 것에는 균열이 있다
그 틈으로 빛이 들어온다.”
욥의 인생은 완벽한 제물이 아니었다.
그는 깨어졌고 무너졌고, 빛이 사라진 듯한 시간 속에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깨어짐의 틈으로부터 하나님의 빛은 다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균열은 실패가 아니라, 빛이 들어오는 자리였다.
지혜는 완전함 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틈과 상처, 실패를 통과해 도달하는 자리에서 피어난다.
데이비드 브룩스(David Brooks, 1961~) 는 『두 번째 산』에서,
인생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산이 성취와 자아 형성의 여정이라면,
두 번째 산은 공동체와 사랑, 의미를 향한 여정이다.
욥은 지금 그는 모든 산이 무너진 자리에서,
영혼의 더 깊은 산, 그 심연의 고개를 지나고 있다.
욥은
고통의 벽 사이 균열된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며,
두 번째 산인 후반부 인생을 향하여 위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욥의 깨짐과 무너짐의 자리는
지혜가 비로소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자리가 된다.
욥의 고통을 균열을 통해 빛이 스며드는 고요한 틈이다.
지혜는 말이 아니라 삶에서 나온다.
지혜는 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언제나 이웃을 살린다.
지혜는 지식보다 사랑을 선택하고,
성공보다 진실을 따르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의 길을 잃지 않는다.
욥은 지혜롭게 살았다.
오늘 이 땅의 욥들도,
고난 중에 하나님께 듣기를 기다리며 여전히 지혜롭게 살고 있다.
주:
[1] 리처드 로어, 『위쪽으로 떨어지다』, 국민북스, 이현주 옮김, 2018. pp.176-177 발췌 요약.
로어는 이 책에서 인생을 ‘전반부 인생과 후반부 인생’으로 나눈다. 전반부 인생이 성취와 성공 등 삶의 그릇을 만드는 시기라면, 후반부 인생은 외적인 성취보다 내면의 깊이를 추구하는 시기로서 ‘삶의 그릇’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는 시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