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7장 - 가장 적대적인 말은 가장 온건하다
욥은 다시 입을 연다. 더 이상 변명하지 않는다.
“내가 죄 없다고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연한 고백이다.
“맹세하네.
나에게서 정의를 앗아가신 하나님,
샷다이(전능하신 분) 곧 이 몸 쓰라리게 하신 분이
살아계심을 걸고서!
내 숨이 내게 남아 있고,
내 코에 하나님의 숨결이 남아 있다네.
그러니 내 입술, 죽어도 나쁜 것을 말하지 않겠네.
내 혀, 죽어도 속이는 말을 내뱉지 않겠네.”(27:2–4)
이것은 세상을 향한 선언이 아니다. 욥은 자신에게 말하고 있다.거짓 고백으로 자신을 부정하지 않겠다고.
“내 공의를 꼭 붙들었으니 풀어 주지 않겠네.
내 마음에 거리끼는 날은 없을 거야.”(27:6)
이 고백은 교만도 자만도 아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도 자신이 여전히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마지막 신뢰의 고백이다.
욥도 친구들처럼 말한다.
“악인의 말로가 비참할 것이다.”
“이것은 불의한 사람이 하나님께 밭을 몫,
폭력배가 샷다이(전능하신 분)께 얻을 유산이지.
악인의 자손은 굶주릴 것이고,
재산은 남에게 넘겨질 것이며, 최후에는 무너질 것이다.”(27:13,14–23)
하지만 똑같은 말이어도, 욥의 말은 친구들의 말과 다르다.
그 뿌리와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욥을 정죄하고,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을 끌어들였다.
그들의 언어는 이론적이고 도식적이며, 무엇보다 냉소적이었다.
반면 욥은, 하나님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분의 정의를 끝까지 붙들겠다는 실존적 신뢰 속에서 말한다.
이 대목에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Maria Wisława Anna Szymborska, 1923~ 2012)의 시가 떠오른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1)
친구들의 말은 겉보기에 용감하고 거룩해 보였지만,
실상은 비겁하고 천박했으며, 잔인하고 적대적이었다.
반면 욥의 말은 겉으로는 거칠고 불경해 보였지만,
오히려 그 안에는 거룩함과 자비, 진실한 신앙이 있었다.
리처드 로어는,
『욥과 고통의 신비』라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러나 이 빛은 어둠 속에 머무는 듯하다.....
이 책은 아무것도 고치지 않으며,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으며,
설명하려는 이들조차도 무시한다.”2)
친구들의 말도, 욥의 말도 어쩌면 모두 헛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그 말이 어디서부터 나왔느냐이다.
확신에 찬 친구들의 말은 공허했고,
고통 속에서 흔들리며 터져 나온 욥의 말은 진실했다.
욥은 정답을 가진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다.
정답을 안다고 믿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는다.
하지만 욥은 질문하면서 믿는다.
오히려 그는 친구들의 권선징악을 따라 말하는 것 같지만,
그 틀을 깨뜨리며 새로운 신앙 고백을 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정의에 대한 기대를
긴장 속에서 동시에 붙들고 있는 것이다.
권선징악은 신앙이나 세계관의 기본 구조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의 아픔을 재단하는 도구가 될 때,
그것은 심판의 언어가 되며,
저열한 쾌감에 굴복하는 조롱으로 타락한다.
신형철은 이렇게 말한다.
“비판은 언제나 가능하다. 풍자는 특정한 때 가능하다. 그러나 조롱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저급한 쾌감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가장 저열한 존재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 해도 되는 조롱은 없다.”3)
그렇다.
욥의 친구들은 조롱의 쾌감에 중독되어 있었다.
해석이라는 이름 아래 욥의 고통을 평가하며,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감정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욥은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의는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결국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의 말은 겉보기엔 친구들의 말과 비슷하지만,
그 말이 나온 깊이와 마음이 다르다.
그래서 욥의 말은 헛소리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 피어난 진정한 신앙의 언어인 것이다.
말의 진정성은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
같은 말을 해도, 그것이 같은 말인 것은 아니다.
주:
[1]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폴란드 태생으로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시 ‘단어를 찾아서’의 일부. 『끝과 시작』, 문학과지성사, 최성은 옮김, 2021. p.14.
[2]Richard Rohr, 『Job and the Mystery of Suffering – Spiritual Reflection』,A Crossroad Book, 1996, p.185. “Epilogue”에서 발췌 요약함.
[3]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2018, 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