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제주도에는 작고 큰 오름이 있다.
기생화산으로 오름마다 분화구가 있으며, 오름마다 각기 다른 곡선의 미를 간직하고 있다.
어떤 오름은 옛날에 뛰놀던 뒷동산처럼 나지막하고, 어떤 오름은 산처럼 험하기도 하다. 공통점이라면, 오름의 능선에 서지 않으면 오름의 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오름에 미친 사람이 있었다.
긴 설명 필요 없이 1985년부터 아예 제주도로 내려가 오름을 주제로 작업을 한 사진작가 김영갑이다.
루게릭병을 얻기 전까지 그는 필름값을 조달하기 위해 무를 뽑아먹으며 허기를 달랠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제주의 오름을 담았다. 그리고 기어이 2005년 삼달리에 있던 폐교를 얻어 김영갑 갤러리를 만든 후 타계하였다.
제주도의 오름을 말할 때 김영갑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게 제주 오름의 신화요, 전설이 된 까닭은 그가 오름에 미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름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내는 경지에 다다랐다. 제대로 미친 것이다.
미치기 위해서는 누군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만 한다.
누군가 듣지 못한 것을 들어야 하고, 그래서 보고 들을 것을 말하되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방언처럼 들려지는 것이다. 그것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한다.
"미쳤다"는 말은 "다다랐다"는 말이다.
달관했기에 미친 사람은 오히려 행복하다.
작은 일이라도 미치지 않으면 다다를 수 없다. 다다르지 못했다는 것은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권력 같은 허망한 것들을 위해서도 쉽사리 미치는데 왜 우리는 의미 있는 일에 미치는 것을 주저해야 하는가?
미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누군가 당신에게 "미쳤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것을 즐겨라.
그것은 이제 곧 누구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이루지 못했던 것을 곧 이룰 것이라는 메시지다.
어느 날 새벽, 용눈이오름을 오르는 길에 오름능선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사진가를 만났다.
나만 미친 것이 아니다. 저기 도반이 있지 않은가!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 아닌 그 누군가도 그러하다는 것은 큰 위로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힘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안이 된다. 나보다 힘겨운 사람에게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나보다 더 힘든 삶을 통해서 나를 위로한다는 것, 그것만큼 감사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사실 우리는 서로서로에게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설령,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나 혹은 자기 욕심에 빠져 살아가는 이들조차도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내 삶을 다잡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삶을 타락시킴으로써 우리를 구원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또한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닌가?
단 한 번의 삶이다.
누구나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간다. 두 번의 삶은 누구에게도 없다.
내게 주어진 오늘은 단 한 번만 주어진 오늘이다.
게다가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어제 이 세상과 이별한 그 누군가에겐 너무 간절했어도 살아보지 못한 날이다.
'미친 듯이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앞뒤 가리지 말고 뛰어가라는 말이 아니다. 경쟁하라는 말도 아니다.
자신의 삶을 깊게 바라보고, 자기만이 꽃 피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또 지금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거기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내 삶에 집중하는 일은 내 삶을 올곧게 만든다.
때론, 천천히 느릿느릿 가다가 때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려가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모두 타인과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견주기 위한 과정이다.
타인과의 경쟁을 거두고 나와 씨름할 것, 그것이 미치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미치면 행복하다.
때론 외롭고, 쓸쓸하다.
그러나 미쳐본 사람은 안다. 미치지 않고 살아갈 방도가 없다는 것을, 그러니 "미쳐라!" 그러면 그런 순간의 삶은 어느덧 전설처럼 신화처럼 남을 것이다. 그렇게 남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살아간 삶이 의미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가장 나에게 정직하였으므로.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미치고자 노력한다.
그저 노력할 뿐이다. 그리고 훗날 돌아보면 어떤 날은 미쳤고, 어떤 날은 미친 듯했으나 덜 미쳤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미친 날'들이 내겐 더 의미 있는 날들로 남았고, 그 날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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