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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Feb 07. 2016

Memento mori & Amor fati

#38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프랑스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낭만의 도시 파리, 똘레랑스(나와 다른 남을 다른 그대로 용인하는 것=관용)의 나라, 혁명의 나라 프랑스 여행을 앞두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중 난데없는 장소가 일 순위가 되었다.


그곳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Paul Charles Aymard Sartre 1905-1980)의 묘지가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였다. 나는 그의 묘지가 보고 싶었다. 그 유명한 실존주의 철학자도 결국 한 줌의 흙이 되어 여느 평범한 사람처럼 누워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Amor fati. 삶을 사랑하라.




몽파르나스 묘지의 묘역



죽음을 기억하는 자만이 오늘의 삶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다.


죽음은 끝이나 단절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상이며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초월적인 그 무엇이다. 한계성에 놓인 인간이 저 초월적인 그 무엇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 그것은 신비다. 


그런 점에서 죽음은 슬퍼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다.

애써 그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덤덤하게 그를 맞이하고 때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를 맞이하는 축제로서의 죽음을 우리는 훈련해야 한다.


몽파르나스 묘지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어머니는 치매와 폐암으로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계셨고, 삶의 임계점에 다다라 있었으며 더는 삶을 연명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다행히 치매는 어머니의  마음속의 근심 걱정을 사라지게 하는 좋은 치매였고, 어머니는 마치 폐암의 고통까지도 잊은 듯했다.




어머니는 응급실에 입원한 후 이틀 뒤에 우리와 이별을 하셨다.

만일 그때 어머님이 삶에 대한 애착으로 우리와의 이별을 힘겨워하셨거나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병상에 계셨더라면 본인은 물론이고 남겨진 이들에게도 큰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쉽고 애틋하고 슬펐지만, 어머니와의 이 땅에서의 인연의 시간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았다.


몽파르나스 묘지


못다 한 삶, 피우지 못한 꿈, 그래서 죽음 앞에서 우리는 슬퍼한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기억한다면, 오늘 나의 삶은 온전히 나의 몫만이 아니라 먼저 죽어간 이들의 몫까지도 살아가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삶을 더 진지하게 살아가게 되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더 감사하게 되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은 그 누군가는 간절히 원했지만 이루지 못한 날이기도 하다.

이런 소중한 날을 살아가면서도 무료한 일상으로 살아가고, 때론 의미 없는 일로 보내고, 혹여는 다른 이들의 삶을 갉아먹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죄이다.


몽파르나스 묘지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Amor fati. 삶을 사랑하라.


나의 의지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혹은 내가 의도하지 않거나 원하지 않았던 오늘을 맞이한다고 해도 살아낼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종로3가 수표로


설을 앞둔 날, 그늘진 골목길 구석에서 쪼그려 앉아 잠을 청하고 있는 이를 보았다.

햇살이라도 비추는 양지라면 조금 더 마음이 덜 아팠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는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올 무렵까지도 그곳에 그렇게 있었다.


나는 모른다.

그가 어떤 까닭으로 이 추운 겨울에 그토록 오랫동안 그곳에 쪼그려 앉아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말끔한 구두와 날 선 바지와 두툼한 점퍼와 깔끔하게 이발한 것으로 미뤄보면 설을 맞아 고향을 가고자 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뭔가가 그를 사로잡았고, 그래서 그는 거기에서 떨고 있을 것이다.




삶이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렇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삶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살아있는 한 죽음이 아니며, 죽음이 아닌 것은 생명이며,
생명은 '살아가라'는 명령이다.

몽파르나스 묘지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Amor fati. 삶을 사랑하라.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사랑하는 말, 이것은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은 말이다.

프랑스 파리로 가던 날, 나는 사실 이 말에 사로잡혀서 묘지를 생각했고, 여러 유명한 묘지들이 많지만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잠들어 있는 묘지를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나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라서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야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것이 프랑스 여행의 마지막 지점이었다는 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된 것이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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