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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07. 2016

나는 어떤 씨앗을 뿌리는가?

#52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강원도 물골 - 옥수수 씨앗을 심고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거저 주는 선물도 있지만,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가꿔 열매를 거둔다.

씨앗은 뿌릴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

작디작은 씨앗이 흙을 만나 싹을 틔우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기적이다.


이 기적을 보면서도 우리가 감동하지 못한다면,
어떤 기적이 우리를 감동시킬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씨앗은 농부만 뿌리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오늘은 씨앗을 뿌리는 날이며, 동시에 이전에 뿌렸던 씨앗의 결실을 맺는 날이기도 하다.


 농부는 쭉정이를 걸러내고 좋은 씨앗만 뿌리지만,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오늘 뿌리는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농부는 씨앗을 뿌릴 때 어떤 결실을 맺을 것인지를 미리 본다.

'미리 봄'은 '믿음'이다. 이 믿음이 있기에 농부는 굶어 죽을지언정 종자를 먹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오늘 우리 삶에 씨앗을 뿌리면서 그것이 어떤 열매로 나타날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지난날의 아주 사소한 일이 자기의 발목을 잡고 있음에도 그것이 자신이 이전에 뿌렸던 삶의 씨앗의 결실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물


삶은 날줄 씨줄로 엮어있는 그물과도 같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더불어 연결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오늘이라는 시간이다.

때로는 과거와 단절할 수도 있으며, 미래를 위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날이 오늘인 것이다.

오늘 무심결 뿌린 씨앗이 결실을 맺어 좋은 결실을 맺는 삶이 복된 삶 이리라.




누군가에게 "이 사람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지만,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답을 줘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동대문 ddp -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



오래전 일이라 이름도 가물거리고, 그와 내가 어떤 일로 만났는지도 애매모호했으며 느낌만 그냥 안 좋았다.

답변을 유보하고, 사나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전의 다이어리를 돌아보다 그와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명확하게 떠올랐다.


"아, 그 사람!"


그것으로 그 사람은 자기가 계획하고 추진하던 일들을 확실하게 매듭지었을까, 아니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후자였다.


바람개비


어찌 보면 그냥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일이었을 터이고, 그도 아주 사소한 일이었으므로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과거의 그날, 씨앗을 뿌렸고, 그 씨앗은 그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날에 열매를 맺었고, 그 열매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거꾸로 였다면, 그의 삶은 얼마나 축복된 삶이었을까?

찔레


몰론, 그 일 하나로 그는 실패한 삶을 살아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 그의 삶을 아주 풍요롭게 이끌어갈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오늘 당장 어떤 결실을 맺으려고 생각하지는 말자.

오늘은 씨앗을 뿌리는 날이다. 그리고 그 씨앗은 그리 멀지 않은 날에 결실하게 될 것이다. 삶의 씨앗은 자연의 씨앗과는 달라서 아침에 뿌리고 저녁에 거둘 수도 있다. 심지어는 한 시간 뒤에도.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나는 지금 어떤 씨앗을 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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