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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10. 2016

내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

#53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한라산 자락에서 만난 애기노루귀


숲 속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봄이 온다는 증거를 작은 풀꽃들이 증명하고 있는 요즘이다.

제주도는 사계절 꽃이 있는 축복받은 섬이다.

한라산 자락의 어딘가에 지금 애기노루귀가 한창 일지, 아니면 이미 지고 있는 중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봄이 한창 무르익었을 것이라는 점이며, 너무 꽃들이 많아 이 작은 애기노루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래서 다행이다.
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살아가므로 매년 그곳에서 피어날 수 있으니까.


경기중부에서 만난 분홍노루귀


제주도에는 애기노루귀가 많고 주로 흰색이었다.

꽃에 미쳐 있을 때, 나는 육지에서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노루귀가 보고 싶었다. 한라산 자락에서 피어나는 애기노루귀도 예뻤지만, 그들을 볼 때마다 육지의 노루귀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애기노루귀를 만난 순간에도 그에게 온전히 몰입하지 못했다.

경기중부에서 만난 청노루귀


그리고 마침내 육지에서 내가 만나고 싶었던, 식물도감에서나 봤던 노루귀들을 만났다.

그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나는 '애기노루귀'를 잊었다. 시간은 흘러서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등장하는 소년이 노인이 되어 다시 나무를 찾았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제야 제주도 한라산 자락에서 피어나는 애기노루귀가 보고 싶었다.


애기노루귀


그러나 그들은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때를 잘 맞춰가야 하는데, 육지에 살면서 한 해 두해 그때를 놓치다 보니 그들과 눈 맞춤한 것이 십 년이 넘어간다. 그러자 비로소 그들이 그리워진 것이다.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멀리 있는 것만 그리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싶은 반성을 한다.


서해의 섬에서 만난 분홍노루귀


내 곁에 있는 것, 나의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을 수도 있다. 이미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기의 것을 갖지 못해서 지금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에 눈이 멀어
한 걸음 너머에 있는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경기중부에서 만난 노루귀


사실,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처럼 소중한 것은 없다.

우리는 지금 내 곁에 있는 것만을 사랑할 수 있으며, 내 곁에 있는 것만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이 아닌 저곳이 그리운 이유는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소유욕'의 결과일 뿐이다.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탐욕이며, 탐욕이 지금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내 곁에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라.
내 곁에 있는 것들과 치열하게 부대끼고 그것을 기어이 사랑하라.
그것이 소유하는 삶을 넘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는 길이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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