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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12. 2016

쉼의 시간을 가지라

#54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더덕


삶의 향이 깊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더불어 나도 삶이 향이 깊은 사람이고 싶다.

매서운 추위를 견뎌낸 더덕의 향은 깊다.




제주에 살 적에 고사리를 꺾으러 간 길에 야생 더덕을 몇 뿌리 만난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더덕을 캤지만, 뿌리는 굵은데 육지에 살 적에 강원도 산골에서 캔 더덕만큼 향이 깊지 않다.

강원도 산골에서 만났던 더덕은 날로 먹으면 목이 아릴 정도로 향이 깊었는데, 제주도의 더덕은 도라지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유는 제주의 겨울이 육지의 겨울보다 따스하기 때문이었다.


냉이


그것은 봄나물 냉이도 마찬가지였다.

봄이면 냉이, 달래, 씀바귀 등 봄나물을 해왔지만 실하기는 하되 육지의 봄나물만큼 쓴맛이 없었다.




삶의 향기도 그러하지 않을까?

산전수전 다 겪었으되 여전히 삶을 이어가는 사람의 삶의 향기가 더욱더 깊을 것이다.

그러나 삶의 향기를 깊게 하기 위해 누구나 다 '겨울과 같은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면 어찌 삶의 향기를 깊게 하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씀바귀


때론 우리의 삶이 어쩔 수 없는 고난 속에 처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삶의 향기를 깊게 하기를.....

그러나 반드시 고난의 시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깊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사색이다.




사색의 시간, 그것이 삶의 향기를 깊게 할 수 있다.

사색의 시간은 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 쉼 없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사색의 시간은 없다. 자기를 돌아볼 시간조차도 없으므로 자신을 향해서 타인을 향해서 귀 기울일 시간이 없으므로 궁극적으로 폭력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미자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타인을 향해서 귀를 기울일 시간이 없으므로 귀머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의 삶뿐 아니라, 타인의 삶도 들여다보지 못하므로 장님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으므로 벙어리처럼,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고, 장님이 눈을 뜨고, 벙어리의 혀가 풀리는 기적은 단지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색의 시간을 통해서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혀가 풀리는 기적을 우리는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이 참 기적이다.
이 기적은 사색으로부터, 사색은 쉼으로부터 온다.


벼의 싹


빨리빨리 걷던 걸음을 멈추고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숨차지 않았으며, 평안했다. 안식이다. 그렇게 안식의 시간을 갖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고적부터 풀숲에 피어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야생의 작은 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보이자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그들은 내게로 와 두런두런 말을 건넸다. 이것이 나의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의 시작이었다.


양지꽃


어느 봄날, 숲으로 난 길을 천천히 걷다가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양지꽃을 만났다.

어릴 적 눈 맞춤을 한 이후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그들의 존재를 다시 확인한 순간이었다. 


아, 내가 봐주지 않았어도 늘 그 자리에서 피고 지고 있었구나!


양지꽃 주변 한 평의 땅에는 양지꽃 말고도 수많은 꽃들이 옹기종기 피어있거나 싹을 내고 있었다.

한 평의 땅에 그토록 많은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은 그동안 아등바등 경쟁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던 내게 경종을 울려주었다.


애기도라지


그리고 10년이 흘렀을 때, 나는 천천히 느릿느릿 내 삶의 속도로 숨차지 않게 살아왔지만 빠른 걸음으로 숨 가쁘게 살아온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빨리빨리 경쟁의 속도로 살았어도 나름 의미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아마도 나는 내 삶의 속도보다 빠른 경쟁의 속도에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감사했다.

천천히 느릿느릿 달팽이의 삶을 살아온 것을, 천천히 쉼의 시간을 즐기면서 살아온 날들에 대한 감사였다.


지금도 나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쉼의 시간을 가지기를 권한다.

쉼의 시간을 통해서 사색을 하게 되고, 그 사색의 시간은 경쟁 일색의 세상사를 내려놓고 온전히 자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자기의 내면을 보는 만큼 삶의 향기도 깊어지므로 비로소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은 향기로운 시간이 된다.


애기괭이밥


당신은 지금 무엇 때문에 쉼 없이 달려가는가?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면 더 풍성한 길을 왜 포기하고 살아가는가?

경쟁사회의 허구를 벗어버리고,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날, 자기만을 위한 쉼의 시간을 일주일에 한 번쯤 가지라. 그러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행복이 손짓할 것이다.


쉼의 시간을 가져라!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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