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됨의 기본 조건이 되는 의식주를 힘겹게 하지 마라
연일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 이어지면서 맑은 하늘 보기를 포기하고 살았습니다.
장마철이라고 비가 몇 차례 오고, 태풍이 온다고 바람도 좀 불어오는가 싶더니만 폭염 속에서도 오랜만에 흰구름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맑은 하늘이 펼쳐집니다.
어릴 적 이맘때면, 늘 보던 그 하늘이었지만 이제 그 하늘은 추억의 하늘이 되어버렸습니다.
일몰의 빛이 아름다울 것 같기도 하고, 오랜만에 시야도 좋으니 매봉산 전망대에서 한남동을 바라보면 제법 선명하게 보일 것 같았습니다.
해지기 전부터 전망대에 올라 한남동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일몰의 빛은 감탄을 자아내지는 못했습니다.
어둠이 내리면 한남동은 어떤 모습일까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한남오거리를 중심으로 대사관들과 유엔빌리지가 모여있는 한남동과 일반 서민들이 모여 사는 한남동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운전기사도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한남동과 등산로에 가까운 골목길 사이사이 다닥다닥 어깨를 겨루며 밀집해 있는 한남동, 길 하나 사이로 빈부의 격차가 극심합니다.
저 집에는 누가 살까?
다닥다닥 성냥갑 같은 집들이지만, 그 집들조차도 아름다워 보인 것은 그 허름한 집들마다에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저마다 고단한 몸을 쉬며, 꿈을 꿀 수 있는 집이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지요.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품위를 유지하고 살아가려면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좋은 나라, 건강한 나라는 인간의 품위를 유지하게 하는 '의식주'의 문제를 땀 흘려 일하는 보통의 사람들이 너무 쉽지는 않을지언정 포기하게 하거나 절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보통의 근로자들이 십 년 동안 월급의 10%를 적립하면, 넓지 않을지언정 알콩달콩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집을 하나 구할 수 있는 체제라야 제대로 된 주택정책을 실행하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얼핏 계산을 해보니 실소가 나옵니다.
한남오거리를 기점으로 도로변은 큰 건물들이 즐비합니다.
마치, 오래된 낡은 건물들을 감추고자 기를 쓰듯 높고 넓습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굉장히 이질적이다 싶었습니다. 중세의 건물들도 여전히 위용을 뽐내며 웅장한 파리와는 다르게 '한강의 기적'을 일군 우리들의 건물은 너무 허술해서 더는 사람들이 살기엔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곳들이 하나 둘 재개발지구로 선정되어 개발되었지만, 죄다 한결같이 아파트촌뿐입니다.
게다가 그곳을 일구고 가꾼 이들은 쫓겨나고, 아파트가 생겨도 그곳에 들어가 살 수 없으니 더 외곽으로 외곽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요.
다 낡았고, 다닥다닥 붙어서 매력도 없는 집들입니다.
그런데, 그 허름한 집들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다 셀 수 없는 저 많은 집들,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 그나마 고단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집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나저나
인간됨의 기본 조건이 되는 의식주를 힘겹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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