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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ug 03. 2016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네!

#보랏빛 맥문동 피어나는 숲에서 산들바람을 느끼다

맥문동


휴가철이라 도시는 조금은 한산하다.

그래서 조금은 시원하지만, 8월의 태양은 입추가 되기 전에 모든 열기를 다 쏟아부을 듯 뜨겁다.

에어컨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만 앉아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 제격일 것만 같다는 유혹에 빠질까 하다가 '이열치열'의 방법으로 폭염에 맞서기로 작정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 근처에 있는 매봉산으로 향했다.

10분이 채 되기 전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무모한 짓이었나 하는 후회의 씨앗이 올라오려는 순간 숲가에 보랏빛 꽃들이 보인다. 맥문동이다.


매미의 허물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7년의 수고 끝에 지상에서 살아가는 7일의 삶, 그 정도의 고함은 질러도 좋지 않을까?

매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매음, 매음~"


정말, 저 소릴까?

마음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일까 싶은데 분명  "맥뭉맥뭉"하고 우는 놈도 있다. 


"아마도 그 놈일 거야"

맥문동과 이슬-이전에 담았던 사진이다.


그렇게 맥문동과 눈 맞춤을 하고 있다 보니 산들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거의 바람이 없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뭇잎을 흔들지도 못할 정도의 세미한 바람이었는데 그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졌다.


어릴 적에는 산들바람만으로도 '아, 시원해!'를 외치곤 했었다.

열대야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으며, 한 여름에도 배에 이불을 덮고 자야 배탈이 나지 않을 정도로 서늘했다.

강원도 같은 곳으로 캠핑이라도 갈라치면 아예 겨울 점퍼를 하나 챙겨서 가야 했었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맥문동과 고추잠자리


이제 곧 고추잠자리가 무리 지어 비행하는 시절이 올 것이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자연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들과 조우하며 가만히 앉아있으니 산들바람이 느껴진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연의 바람인가 싶다. 


도심에서 맞는 여름의 바람은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와 도시의 열기로 숨이 턱턱 막히게 한다. 그런데 도심에 자리라고 있지만, 그래도 산이라고, 숲이라고 산들바람이 불어오니 시원하다니 놀라울 뿐이다.


아마도 그들은 늘 그렇게 산들바람을 보내주었음에도 이제야 그것을 느끼는 나를 보며 놀랐을 것이다.



이제 곧 입추다.

그래서 가을꽃들이 보이기 시작했구나 싶다.

여름과 가을을 이어주는 보랏빛 맥문동이 피어나는 숲에서 만난 산들바람은 자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한다.


땀을 흠뻑 흘리고 돌아와 찬물로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에어컨 바람에만 몸을 맡기고 있었을 때에는 뭔가 그 시원함이 상쾌하지 않았는데, 땀 흘린 뒤의 시원함에는 상쾌함이 들어있다.


보랏빛 맥문동, 때를 잊지 않고 피어 주어 고맙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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