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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18. 2016

골목길은 내 고향이었다

#56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에필로그'


'소소한 풍경 이야기'를 시작하며 프롤로그를 썼다.

포롤로그가 있다는 것은 에필로그도 있을 것이라는 예고이며, 이제는 그 시간이 왔음을 느낀다.

어쩌면 이 공간은 내밀하고도 은밀한 골목길 같은 곳이었으며 나는 내 안 추억의 골목길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사실, 나 스스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살고는 싶은데 살아지지 않음으로 인해 곤고함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렇게 살지 못하므로 나는 되뇌어야만 했다.

사실은 누군가에게 그렇게 살아가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그렇게 살아가라고 격려한 것이다.



나의 고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드문드문 아파트 사이에 남아있을 뿐, 이젠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을 상상으로나마 그리기도 힘들다.

그래서 나에겐 끊임없이 고향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골목길은 내 고향이었다.


거기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골목길은 좁고 내밀하고 은밀했으며, 나라는 존재를 숨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그것이 좋았다.



한병철 교수의 책 제목대로 우리는 '투명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투명사회의 일원이 되어 '피로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며, 고도의 '심리정치'에 휘말려 '시간의 향기'가 없는 삶을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 반기를 들고 싶었다.


품위 있게 웃으면서 화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것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였으며, 빨리빨리가 아닌 느릿느릿 이었으며, 맘몬이 아닌 작은 것이었다. 인공이 아닌 자연의 것, 거대담론이 아닌 소소한 것이었다.



나에게 쓴 편지 같은 것이었으나,

잊혀가던 골목길의 추억들을 스멀스멀 끌어올려 준 것은 독자들의 호응이었다.

아날로그를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브런치의 기능인 조회수와 공유와 라이킷과 댓글 등에 무심한 듯 민감했다.

어쩔 수 없는 속물이었지만, 오히려 그 속물이었음이 다행이었다. 나는 속물이었고, 앞으로도 속물일 것이다.


허긴, 속물이라는 것은 거룩하다는 것과도 통하는 것이다.



이제 한 숨 깊게 들이쉬고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이 곳에서는 나름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과 글로 주로 작업을 했지만, 다시 시작할 때에는 어느 쪽이 되었든지 독자들보다는 내가 더 좋아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나를 위하는 것이 결국은 남을 위하는 것이고 그것이 다시 나를 위하는 것이기에 나는 내가 더 좋아하는 작업을 할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꽤나 많은 양의 작업을 했다. 

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사진이나 글감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특히 글은 내가 살지도 못하면서 남에게만 강요하는 글이 되지 않고자 노력했었다. 


그동안 매거진 'Analogue-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를 구독해 주시고, 라이킷 해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새로운 매거진으로 인사를 드릴 때에도 많은 성원이 있으시길 바란다. 


봄이다. 볼 것 많은 봄이다.
볼 것이 많은 봄날에는
디지털과 잠시 결별하는 것도 제대로 봄을 보는 방법이겠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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