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척박한 곳에서 피어난 가을꽃들을 보면서 삶을 돌아보다
올 가을에는 제주도와 서해안의 갯바위와 해안가에서나 만났던 해국을 동해안에서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한적한 바다를 걸으면 파도소리에 취해있던 나를 갯바위 틈 사이로 초록 생명의 빛이 유혹했고, 그 빛에 이끌려 갯바위에 올라가 보니 해국이 피어있었다.
나는 해국에게 마음을 담아 고마움을 전했다.
"참으로 곱다! 고맙다, 이렇게 척박한 곳에서도 피어주어서...."
그러나 어디 바위틈에 피어난 꽃이 해국뿐일까?
설악산 오대산과 권금성을 산책하며 만난 수많은 가을꽃들, 그중에서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꽃들에게 눈길이 갔다.
바위에 피어난 꽃들 이름을 하나 둘 불러주었다.
노란 별을 닮은 바위채송화, 보랏빛 꽃향유, 하얀 혹은 연분홍의 구절초, 연보랏빛 구절초, 진하다 못해 푸른빛으로 피어나는 용담, 연한 보랏빛의 쑥부쟁이....
척박한 곳이다 보니 키는 작다.
그러나 꽃은 더욱 진하고, 향은 더욱 깊다.
그냥 생존전략이라고 간단하게 말하기에는 너는 정 없고, 그렇게 피어난 꽃들에게는 그들이 온몸으로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듣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고난과 절망에도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도 마침내 피어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알 거예요.
그 고난과 절망과도 같던 것들이 여러분의 삶에 어떤 향기와 빛깔이 되었는지를.
그리고 설령 피어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았다면 말라죽은들 그것이 왜 실패인가요?
바위틈에서 피어난 꽃향유와 땅에 피어난 꽃향유의 크기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러나 아무리 꽃송이가 크고 탐스러워도 바위틈에서 피어난 이 작은 꽃향유 한 송이 견줄 수 없다.
비록 한 송이,
작은 데다가 느릿느릿 피어나지만 그들의 빛깔과 향기는 그야말로 꽃향유의 진면목이다.
더 깊은 향기, 더 고운 빛깔
이 꽃들에게 누군들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삶에 누군들 응원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가 제대로 피어나지 못했다고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설악산에서 만난 가을꽃들, 바위틈에 피어난 꽃들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온몸으로 그들은 말한다.
절대로, 인생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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