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골 할머니의 물건은 차마 담을 수 없을 만큼 슬펐다.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강원도 물골 할머니 집을 찾았다.
어머니의 산소가 있는 곳이기에 겸사겸사 들렀지만, 할머니는 따님 댁에서 추석명절을 쇠신다고 가셨고, 물골 할머니의 집은 비어있었다.
"그곳에 뭐 찍을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개밥도 좀 주시고 편안하게 하세요."
할머니의 물건들을 사진으로 담아도 되겠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산골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몇 해 전 돌아가신 후에 홀로 살고 계신다.
혼자서 살아도 그곳이 가장 편하시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먹을 것 정도의 농사만 지신다고는 했지만 제법 규모가 크다.
할머니의 물건, 어떤 여성적인 것들이 있길 고대했지만, 할머니의 물건은 보통의 여성들의 물건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리고 너무 커서 사진으로 담아도 일부밖에는 담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다.
농약분무기로부터 낫이나 호미 같은 농기구들... 자잘한 것들은 할머니의 물건이었지만, 그것이 할머니의 삶을 표현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 담기를 포기했다.
전화기, 저 숫자의 조합으로 세상과 소통했을 할머니, 그곳은 산골이라 아직 스마트폰도 터지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전화, 그것이 할머니와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흔히 '초크 다마'라고 부르는 스타터, 형광등을 켤 때 사용되던 것이지만 요즘에는 볼 수 없는 형태다.
아주 오래된 것이 할머니의 집 뒤편 먼지 쌓인 찬장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남아있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할머니의 물건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엄밀히 말하면, 할머니의 집에 있는 것이니 할머니의 물건이다.
나는 할머니의 물건 중에서 이런 자잘한 것들이었거나 화장품이나 혹은 반질 고리 같은 것들을 기대했다.
그러나 전기톱, 예초기, 경운기, 탈곡기..... 이런 것들과 재래식 부엌에 놓여있는 가마솥이나 도끼나 장작 같은 것들은 남자의 물건이기에도 벅찬 것들이었기에 그냥 휘둘러보고 마당에 앉았다.
비 오는 날이면 형형색색의 패션장화들이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형형색색의 장화가 아니라, 남녀공용으로 사용되는 장화가 있다. 저 장화가 아니고서는 이슬 맺힌 풀숲을 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언제 풀숲에서 나타날지 모르는 뱀의 출현에도 안전한 장화다.
물론, 할머니의 장화는 붉은색일 것이다.
몇 해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장화, 그것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간혹 나처럼 뜨내기로 오는 이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빨래판, 지난 7월에만 해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이번 추석에 찾아보니 사라졌다.
어쩌면 불쏘시개로 사용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수명을 다한 후에 제 몸을 살라서라도 할머니의 방을 따스하게 했을 터이니 어쩌면 자식들보다 더 나은 존재였나 싶다.
나는 할머니의 물건이 그 남자의 물건처럼 조금은 세련된 것들이 나오길 바란 것일까?
그건 아니었는데, 여성의 자잘한 소품 같은 것들- 그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면서 왜 할머니의 물건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야!'라고 손사래질 치고 싶었던 것일까?
물골 할머니의 물건은 차마 담을 수 없을 만큼 슬펐기 때문이었다.
# 이 글에 사용된 사진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