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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Sep 12. 2016

오랜 기다림 끝에 피어나는 가을꽃

#가을에 피어나는 꽃들에게 희망을

쑥부쟁이


잔설이 가시기도 전에 봄의 전령사로 피어나는 꽃들이 있는가 하면, 봄과 여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피어나는 꽃들이 있다. 


가을에 피어나는 꽃은 대기만성이요, 기다림의 묘미를 아는 꽃이다. 그래서 가을꽃은 향이 깊다.

제 몸에 겨울뿐 아니라 차곡차곡 봄과 여름도 새겨 넣었으니 세상의 온갖 풍파를 다 새겨 넣은 후에야 비로소 꽃을 피우니 향기가 깊을 수밖에 없다.


그 여느 계절에 피어난 꽃보다 가을에 피어난 꽃이 향기가 깊은 까닭이다.


미국쑥부쟁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땅에 피어나던 쑥부쟁이를 밀어내고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한 미국쑥부쟁이다.

제국주의의 망령을 보는 듯하여 얄밉기도 하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꽃을 미워할 까닭은 없을 것이다.


어디든 뿌리를 내리면 기꺼이 피어나는 꽃, 그 꽃의 생명력이 기특할 뿐이고, 다만 그들의 세력 확장에 뿌리내릴 곳을 잃어가는 우리의 토종꽃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꽃은 하나의 상징이다.

미국쑥부쟁이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상징은 무엇인가?


코스모스


가을꽃으로 알려진 코스모스는 사실 여름부터 피어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여름꽃이요, 가을까지 끊임없이 피어나는 꽃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가을꽃으로 알려진 것은 무더운 여름 피어나는 꽃들이 적은 계절에 화사한 빛으로 피어나기 때문일 터이다.


이 꽃 역시도 외래종이다.

신작로가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절 신작로 주변에 심어 도로의 유실을 막았던 꽃, 이젠 아스팔트와 시멘트 도로가 점령을 해서 코스모스의 역할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때 심긴 꽃의 후손들은 길가 여기저기에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수크령


이것도 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는 수크령, 아내는 "강아지풀인데 엄청나게 큰 거!"라고 했다.

작은 오솔길들이 제법 많았을 때에 오솔길 양옆으로는 수크령이 제법 많이 자랐고, 그 이파리들을 양 옆으로 엮어 묶어 놓으면 오솔길을 걷던 이들이 걸려 넘어지곤 했다.


수크령을 묶어놓고는 먼발치에서 오솔길을 걸어가던 이들을 지켜보다가 풀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깔깔거리며 도망치던 유년의 추억이 있다. 물론, 내가 엮어 놓은 것에 내가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깨어진 적도 있었다.


줄기를 뽑아 앞서가던 친구의 목덜미에 스치며 "요즘 풀밭에 왜 이렇게 벌레가 많아?"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풀밭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던 모습이 오래된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여전히 남아있다.


어릴 적에 자연은 온통 놀잇감이었으며, 모두 공짜였다.


 

고마리


수생식물 고마리는 물을 정화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고마우리 고마우리" 하다가 '고마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논 옆으로 난 도랑을 뒤지다 보면 살이 제법 오른 미꾸라지와 가재와 붕어 등을 잡을 수 있었다. 특히, 고마리가 무성하게 피어난 곳은 물고기들의 휴식처이자 피난처이기도 했으므로 족대를 대고 고마리를 사정없이 밟아대면 놀란 물고기들이 족대로 몰려들어가곤 했다.


짓밟혀버린 고마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이름처럼 고마운 것은 이튿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꼿꼿하게 일어나 작은 꽃들을 방실방실 피워냈으니 참으로 고마운 꽃이었다.


미국가막사리


미국가막사리와 도깨비풀을 아직도 구분하기는 쉽지 않지만, 놀이기구로 사용되는 측면에서는 다를 바 없었다.

씨앗이 갈고리 모양으로 되어 있어 적당하게 익었을 때 줄기를 잘라 던지면 옷에 척척 달라붙었다. 


풀숲을 거닐다 보면 바지에 인정사정없이 달라붙던 녀석들이었다.

그것이 그들의 여행하는 방법이요, 삶의 지경을 넓혀가는 지혜였고, 꼬마들의 손에 잘려 던져지는 방법 또한 그들의 여행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여행의 여행을 거듭한 결과 가을이면 그야말로 흙이 있는 곳이라면 애써 찾지 않아도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예쁘지 않으며 향기가 없는 대신 그들은 꼬마들의 놀잇감이 되기도 하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갔으니 참으로 지혜로운 처신이다.


구절초


이제 조금 고급 혹은 귀한 대접을 받는 가을꽃으로 들어가 보자.

구절초,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다. 


개인적으로 가을꽃의 대명사로 여기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백미는 하얗게 피어나기 전 간직하고 있는 분홍빛의 꽃망울이다. 간혹 피어난 뒤에도 분홍빛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분홍빛 구절초를 만나면 마치 행운을 만난 듯하다.


달팽이 한 마리가 구절초에 앉아 아침산책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별난 놈이다 싶었다. 구절초 향기에 취해 그곳에 왔는가?


 

구절초


물매화


가을꽃들이 앞을 다퉈 피어나고 있다.

흔하지 않은 꽃이지만 물매화도 피어나는 계절이다. 

풀숲에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는 일, 그것은 꽃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요, 우리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까닭은 그들을 바라볼 때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가위를 맞이하여 고향길을 걸을 때 풀숲이나 길가에 피어난 꽃들에게도 "안녕!"안부인사를 나누는 것도 좋은 일이겠다.



# 이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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