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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로 May 31. 2024

바둑선배께서 가르쳐준 것. 착점과 인생.


바둑을 좀 둘 줄아냐는 질문을 받아본게 대학시절이었습니다. 저의 바둑 실력은 비루합니다만, 나름의 호방한 기세는 있다는 자신감으로 대국에 응하였으나 처참한 패배를 겪게되죠. 그 때 저에게 바둑 좀 두냐고 물었던 분은 학교선배님이었습니다. 좀 늦은나이에 대학에 입학을 하신분이라 학번은 저와 3학번차이였지만 나이는 9살이 많으셨네요. 나이차이가 크다보니 친하기가 어려웠으나 바둑으로 학과내에서는 나름 교분을 트고 지냈던 분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선배는 바둑의 고수였습니다. 가끔 바둑책을 읽는것을 보았을때, 구력이 꽤나 오래된 사람이었죠. 제 나이대만해도 사실 바둑을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시절이었습니다. 이 선배가 특이했던게 인터넷 바둑은 거의 안두고 실제 바둑판이 마련된 곳에서만 바둑을 두고싶어했던 성향이 있었습니다. 어차피 바둑을 둘 줄 아는사람은 줄었고, 특히나 젊은세대에서는 바둑을 제대로 둘 수있는 상대를 찾기 힘든데 왜 그러나 싶어서 물어봤죠. 왜 인터넷바둑은 안두시느냐.

제 질문에 선배는 오히려 저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게 뭔줄 아냐고요.

글쎄요.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계가가 아니겠습니까.

선배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딱 한 마디를 하더군요. 아주 단정적인 어조였습니다.

착점. 착점이 가장 중요하다
착점이요?

착점이라함은 바둑판에 바둑돌을 올려놓는 행위입니다. 물론 착점을 해야 바둑판위에서 전투가 시작되고, 전투가 끝나니 개전의 착점과 종전의 착점이란 행위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착점이라는 단어 자체는 그저 바둑돌을 올리는것인데 그게 바둑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조금 의아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직관력이나 길을보는눈이라든지 뭐 그런얘기가 나올줄 알았거든요.

제가 별다른 말을 안하고 있으니까 선배의 다소 긴 장광설이 이어졌습니다.

바둑판위에 바둑돌이 올라감과 동시에 바둑판은 전투의 장이되고, 우주가되고, 더 나아가서는 인생이된다. 무슨말이냐고? 중지와 검지로 반짝거리는 돌하나를 집어서 19줄 선과 361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판의 한곳에 돌을 올려놓을때, 비로소 모든것이 시작된다.  첫 착점은 우리의 인생 첫 울음소리를 뜻하고 바둑판은 착점과 함께 비로소 생명력을 얻어 우리가 버텨내야할  삶이된다. 삶속에서 바둑알을 하나씩 놓는 행위가 곧 선택의 연장선이고 줄과점은 우리가 건너야할 사선과 생선이되는것이다. 착점의 연속은 결국 선택의 연속. 계가는 그로인한 결과일뿐이지 바둑의 승패를 가리는것도, 인생의 승부를 가리는것도 결국은 착점의 연속일뿐이다. 바둑이든 인생이든 성패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착일 뿐.

정확히 저렇게 말한건 아니었는데 골자는 저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말을 처음에 듣고 개인적으로는 꽤나 멋진말이라 생각하여 노트에 적어뒀던거같은데 지금은 노트가 다 사라졌네요. 아무튼 바둑판에 바둑알을 착점할 때 '딱' 소리를내며 달라붙는 그 느낌이 좋아서 직접 바둑판에 두는 바둑을 선호한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바둑을 몇판 두시면서 저의 기풍에 대한 감상도 좀 얘기를 해주셨는데요. 호쾌하나 마무리가 약하다고 하셨습니다. 대충은 무슨뜻인지 아실듯합니다. 그말을 곰곰이 곱씹어볼수록, 생각해보면 제 인생 자체가 바둑의 기풍을 닮았던거같습니다. 기세좋게 시작은 합니다만 마무리지은 일이 많이 없거든요. 왜 바둑에 인생을 대입하는지 약간은 이해가 가는 때가 있었습니다.

바둑은 그야말로 돌로하는 싸움과 같죠. 수담이라는 고아한 표현도 있습니다만, 저는 바둑을 거친 전투와 빗대는것을 더 좋아합니다.

제가 바둑을 잘두려면 무엇을 고치는게  가장 좋겠느냐는 질문에 장고하던 선배님이 내놓은 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다고생각하는부분을 소홀해서는 대마를 잡지못한다'

사실 바둑에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겠지요. 사소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사람이 어떤 큰일을 할수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선배는 저에게 바둑에 대한 가르침뿐만아니라 저라는 사람이 가진 단점에 대한 이야기로 정곡을 찌르셨던것 같습니다. 저는 게을러서 학교과제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어느날인가 선배가 저에게 자신의 기풍은 어떤거같냐는 질문을 한적이 있었는데요. 갑자기 왜 저한테 그런걸 물으셨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만, 저도 나름 고심한 끝에 한마디로 선배가 가진 기풍에 대한 감상을 내놓았습니다.
'요행수가없습니다'

제 감상이 마음에 드셨는지 어땠는지는 잘모르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별말씀이 없었던것까지만 기억이 나네요.

졸업직전에 졸업선물로 대단한걸 받았다고 말씀하시면서 웃던 모습이 남아있습니다. 중형차 한대라도 받으신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비자나무로 된 바둑판이었더군요. 언제한번 그 비자나무바둑판에서 바둑한판 두자고 하셨습니다. 비자나무에 바둑알이 달라붙는감촉을 느껴본 사람들은 바둑판으로 비자나무만 찾는다면서요.

세월은 빠르게 흐르고 세상은 변해가고 거기에 적응하고자 아등바등 애쓰다보니 인연이라는것도 끊기게 되더군요. 사실 저의 게으른성격탓도 크겠습니다. 전화한통이나 문자한통이 어려운일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결국 저는 비자나무바둑판에 바둑알을 올려보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3년전에 선배님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자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요. 인생에 요행수는 없는것처럼 성실하셨던 분이기에 그 죽음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끊어졌던 연락이 부고로 이어진 상황에 뭐라말할 수 없는 감정이 일었습니다.

멍하니 장례식장으로 가던길에 보이던 다이소에서 바둑알을 샀었네요. 우연히 보인 다이소가 있어서 다행이었을까요. 사실 저는 대학졸업이후 바둑을 거의 두지않았지만, 문득 바둑알 몇개라도 영정앞에 올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장례식장에 도착해보니 바둑알을 살필요 없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영정아래에는 이미 고풍스러워보이는 바둑판이 놓여져있었습니다. 비자나무 바둑판이었습니다. 반짝이는 바둑돌이 가득담긴 통이 같이였죠. 저와 연락이 끊긴지오래고, 저는 대학졸업이후 바둑을 거의 잊고살았지만 선배는 계속 바둑을 두셨게 분명했습니다. 생전 그 바둑판으로 바둑두는걸 참 좋아했는데 막상 상대가 별로 없어서 혼자 바둑을 즐기셨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습니다. 저는 맞절한 유족분께 돌을 하나 올려도 되겠냐고 여쭙고 흑돌을 집어 우상귀에 올렸습니다. 것이 제 바둑스승께 내미는 마지막 한 수가 되어버렸습니다.

비자나무바둑판에 바둑알이 달라붙는 감촉은 잊을 수 없을것이라던 선배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바둑초보인 제가 착점할 때의 그 감촉을 지금도 기억하고있는걸보면 선배님은 적어도 틀린말을 하는분이 아니셨던거죠.

오랜만에 납골당에 다녀오는중에 감회가 새로워 썼습니다. 재미없는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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