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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다로 May 29. 2024

조선 제일검은 누구?

고려의 소드마스터 척준경과 조선제일검.


고려말 조선초만해도 조선군은 강군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럴수밖에 없던것이 당시 시대상황이 그랬습니다. 곳곳에서 왜군의 침략이 있었고 북방에서는 여진족들과의 지리멸렬한 단기접전이 계속있었습니다.

조선초에는 팽배수라는 보직이 있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칼이랑 방패를 들고 백병전을 펼치는 보병병과였습니다. 가끔 역사드라마나 역사다큐에 지나가듯이 보여지기 때문에 잡졸로 여겨지기 쉽지만, 조선초 팽배수들의 전투력은 무시할만한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진족과의 싸움은 대규모회전처럼 이루어지지않았고, 게릴라식의 전투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여진족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팽배수 개인의 무력이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당시 장창병 다섯과 팽배수하나가 맞붙으면 팽배수 하나가 이긴다는 기록도 남아있는걸 보면 각자가 지닌 무위는 어느정도 보장된 수준이었던걸로 보입니다.

아무튼 조선초만해도 이렇게 개인이 칼을 잘쓰는 병사들이 존재하였으나 이백여년이 지나면서 이 팽배수의 입지는 사라지게됩니다. 평화가 지속된것도 있고 개개인의 무력에 의존하는 전략이 도외시되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팽배수 양성이 부실해지죠. 조선은 백병전보다 멀리서 상대를 공략하는것에 더 매력을 느꼈던것으로 보입니다. 근데 사실 궁병을 육성하는것도 굉장히 어려운일이었던걸 보면 팽배수의 입지가 사라진것은 좀 아쉬운일입니다.

그렇다보니 조선초까지는 칼 잘쓰는 사람들이 꽤있었지만 그 명맥은 곧 끊기게됩니다. 결국 임진왜란 때 왜군들의 왜도하나를 우리 조선군 10여명이 감당못한다는 기록이 남을정도로 백병전에 취약해집니다.

김체건. 정확한 생몰년도는 모릅니다만, 숙종시절 군교를 지냈다는 기록을 보면 조선중기쯤 인물로 보입니다. 무예도보통지라는 무예서에서 '왜검'항목에 등장합니다.

김체건은 검술에 대한 재능이 남달랐다고합니다. 당시 검에 대해서는 일본만한 곳이 없다하여 일본에 가서 직접 검술을 배워왔는데, 그 과정이 신비롭습니다. 당시 일본의 검술은 종류도 많고 각자 다른 방식의 검술연마방식에, 일본특유의 제도식 교육으로 인해 외부인들이 쉽게 검술을 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승과 제자가 함께다니며 검술을 가르치고 직접 시연해보이면서 실전성을 기르는데, 이 과정에서 죽는경우도 있고 불구가되는경우도 많다보니 온전히 왜검술을 얻기가 쉽지않았습니다.

숙종의 명에 따라 일본으로 건너간 김체건은 약3년여간 일본전역을 돌아다니며 검술을 연마한것으로보입니다. 김체건이 일본검술을 어떻게 얻었는지에 대해 정확한 사료는 없으나, 여러정황을 보았을때 무예에 대한 이해도가 타의추종을 불허했던인물이었던것은 맞는듯싶습니다. 무협지에 나오는 몇번 보면 그 오의를 파악하는 먼치킨같은 면모까지는 아니었어도, 사무라이들끼리 싸우는모습을 보면서 그 형태를 파악했던것 같습니다. 참고로 왜의 검술이 뛰어났던것도 맞고 백병전에서 왜인들이 뛰어났던것도 맞지만, 실제 일본내 검술가들끼리의 싸움은 길지 않았다고합니다. 거의 3합이내에 승부가 났다고하네요.

영화처럼 화려한 검식을 주고받고 필살기같은것을 펼치고 이렇다기보다는, 지극히 실전성만을 추구하여 다소 비겁한 수도 많았다고 합니다. 오로지 살신에 대한 수 만을 추구하던검이다보니, 김체건이 그 검식을 얻는과정에서 많은 위기를 넘겼을것으로 짐작이됩니다.

아무튼 그렇게 왜검을 얻어온 김체건이 숙종앞에서 검법을 시연한 장면이 사료로 남아있습니다. 그 기록이 무협소설속 문장같아 재밌습니다.

'뿌려놓은 재 위에서 검술을 펼치는데, 검식은 검무의 경지에 이르러 재에도 발자국조차 남지않으니 일신의 가볍기가 이루말할수없다'

김체건은 단순히 일본왜검술만 익힌것이 아니고 본국검법과 같은 우리나라 정통검술에도 능했다합니다. 뿐만아니라 청나라까지 가서 중국검술을 익혀왔으니 당시 조선에서 검술의 달인이라 할만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김체건의 무위는 그 아들 '검선지류(劍仙之類) 김광택'에게 이어지니 타고난 무골의 재능이 대를 이어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척준경과의 비교는 어떨까하시는분들이 계실텐데, 개인적으로는 아비규환 전시속에서 적장의 수급을 나락쓸듯이 휘젓고 다녔다는 사료가 남아 무신으로 군림한 척준경이 더 우위에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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