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많이 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좋은가

by 강다로

독서라는 행위는 무조건적으로 좋은가에 대한 생각을 근래에 해본적이 있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독서라는 취미에 대해 우리는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가 더 맞겠네요.

네가 책읽기 싫으니까 그럴듯한 이유를 찾으려고 하는 헛짓아니냐라고 한다면 그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저도 독서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요.

어린시절의 저에게는 약간의 강박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재미없는 책이라도 일단 책을 펴서 첫장을 읽었다면, 그 책은 반드시 끝까지 읽어야한다는 강박말입니다.

이런 강박이 왜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칸트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 칸트의 책을 읽었던 것이 중학교3년중 가장 지루한 시기였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양반도 그저 산책시간에 대한 강박에 시달렸을 뿐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의 저는 재밌는 책을 고르는 재주가 없었습니다.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중1시절 처음 읽었는데,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창세기전 게임에서 멋지게 나오던 캐릭터의 이름과 같아서였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낚였구나라는 생각을 계속했지만, 당시엔 내가 이 책을 책임져야겠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다라고 자랑하는것만큼 우스운 행위가 없다는 것을 지금의 저는 압니다. 하지만 어린시절엔 남들이 재미없다고 말하던 책을 나는 읽어낸것에 대한 되도않는 자부심 비스무리한게 제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죠.

중2때 학교에서 플루타크영웅전을 기반으로한 퀴즈대회를 연다고했습니다. 플루타크라는 이름이 꼭 게임캐릭터이름 같아서 저는 그 책을 집어들었더랬죠. 고대로마의 오현제시절 플루타르코스라는 양반이 쓴 위인전같은 건데... 위인전이 대부분 그렇듯 별재미가 없습니다. 그나마 테세우스같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던 영웅들 부분은 읽을만했죠.

근데 저는 그 책을 끝까지 완독했습니다. 퀴즈대회를 노려보겠다라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펼친 책이니까 이건 끝을 봐야한다는 강박이 도진것 뿐이었죠.

퀴즈대회의 결과가 궁금하실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실 퀴즈대회는 싱겁게 끝났습니다. 중학교 통틀어 그 책을 제대로 읽은 학생이 없어서 다섯번째 문제만에 결과는 나왔거든요.

5번문제는 지금도 기억나네요.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말을 남기고 이 강을 건넙니다. 이 강의 이름을 적으세요.

요단강이라고 적은 학생들이 제일 많았던 기억이 나네요.
삼도천이라는 고급?용어를 쓴 학생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싱거운 퀴즈대회를 정말 본의아니게 우승한 이후로 저의 독서강박은 조금 더 심해집니다. 아무리 재미없어도 돌아오는게 있구나 뭐 이런 보상심리가 작용한것이죠.

그 뒤로도 수많은 재미없는 책의 산맥들을 넘어다니다보니 장점하나는 있더군요. 아무리 재미없는 책이라도 부분부분 작게나마 재밌는 부분은 한두개씩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겁니다.

물론 그 재미 역시 다른 재미있는 책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것이지만, 텁텁하고 건조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게되면.

오아시스물은 그 어떤 물보다 달고 맛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중에 물을 다 퍼먹고 갈증이 해소되고나면 물이 좀 썼던것도 같고 오염물도 있고 질이 좋지않은 물을 마셨네라는 냉담한 평가가 이어지겠지만, 물을 퍼먹을 때의 상황에선 그 물만큼 맛있는게 없는것처럼요

저는 그래서 다 읽고나면 독후감이나 일기를 썼는데 길게 쓰질 못했습니다. 어디어디부분이 나름 재미있었다, 전체적으로 더럽게 재미가없었고 주변인물 이름도 기억이 안난다.. 뭐 이런식의 후기가 제 오래된 일기장에 남아있습니다.

물론 재미없는 책만 읽은건 결코 아닙니다. 도서관에서 아무렇게나 집어든 책이 재밌는 날은 운이 좋은날이었습니다. 스무살이 넘어서부터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에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구요.

지금은 저런 강박증이 사라졌습니다. 걍 아무렇게나 읽다가 재미없으면 책을 덮습니다. 재밌게 읽을거리만 읽어도 평생동안 다 읽지 못하는 시대인데 굳이 취향에도 안맞는것들에 시간을 쓸필요가있는가 하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보면 책을 읽는행위는 이성간의 연애와도 그래서 비슷하단 생각도 한적이 있습니다. 초장부터 별 느낌이 없는데 질질끌고 가봐야 마지막에 짠 하는 반전따위는 없다는것이.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비슷한 책만 찾는 것과 갈수록 어느 한점으로 수렴하는 그래프처럼 좁혀지는 내가원하는 여성상. 관성의 법칙은 물리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방향으로 뻗어져가기 시작하는 취향이라는 것에도 적용이 되는것 같다는 사소한 깨달음까지.

취향안 맞는 책과 취향안맞는 여자와의 연애가 비슷하지않나.. 이건 그냥 제 사소한 생각입니다.

쓸데없는 잡설이 길었네요. 책을 많이 읽는다는 행위에 너무 과한 기대감을 우리 현대사회인들은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저만의 의문에서 뻘글이 길어졌네요.

2시간3시간 들여 처음 데미안을 읽은 중학교1학년 학생보다 15분짜리 데미안 핵심만 추린 유튜브를 본 학생이 오히려 책에 대한 이해도는 높을 가능성이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독서의 본질은 이제 지식의 습득이나 재미 자체라기보다는, 독서를 통해 이어지는 우리 뇌의 생각과 추론의 과정자체에 있다는 점으로 변모했다라고. 어떻게보면 뇌의 신경회로를 태워버릴만큼 흥미로운 게임을 하는 행위와 크게 다를바가 없지 않을까.

독서는 고상하고 추앙받을 대단한 행위가 아니라 오락과 자기만족을 위한 취미 중 하나정도로 보는게 맞지않나 하는 시각입니다.

사실 이 시대의 지식인이니 작가니 교양인이니 글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이 읽고 썼다는 자부심에 취해 함부로 내뱉는 이야기들 중, 생활전선에서 하루하루 분투하는 사람들의 한숨소리보다 나아보이는게 없어서 이리 길게 재미없는 글을 썼습니다.

많이 읽고 많이 썼다는 인간들이 하는 소리를 듣다보니 뭐.. 약간 현타가 와서 쓴 뻘글정도로 이해해주시기를.

그리고 재미없는 이런 긴 글을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그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그럼에도 독서라는 행위는 반드시 필요하다 믿고,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수신修身하고 돌아보는 통찰이 생기신 분들께는 무척이나 죄송할 수 있는 글임을 인정하겠습니다.

그런분들께는 이 글이 아직 경지에 도달하지못한 어설픈 애송이의 한탄정도로..
그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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