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와의 재회

by 강다로

같은학번 동기였던 그 친구는 처음부터 주목받던 친구였습니다.

입학전 오티에서 남자선배들의 눈은 그 친구를 쳐다볼때만 좀 달랐죠. 아마 제 눈도 비슷했을겁니다.

사과대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예쁜여학생이 들어왔다는 거창한 소문이 돌고있다는 것을, 과대에게 전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나 동기들은 최소한 학교 졸업할때까지 그 친구보다 예쁜여자를 볼 가능성이 적어졌다는 점. 그 정도가 그 소문에 대한 제 간략한 후기였습니다.

3월 중순쯤에 사소한 정보하나를 알게됩니다. 그 예쁜 동기가 저희보다 2살이 많은 누나였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동안 두살많은 걸 왜 몰랐지? 그런 의문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나랑은 관련없을 사람이라는 것을 저는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두살이 더 많든 세살이 더 많든 항상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있는 인기녀의 대학생활은 나와 접점이 없을게 뻔했으니까요.

그러니까 두 살 나이가 더 많은 누나라는 사실은. 인의장벽이라는 공고한 성벽 바깥으로, 동기라는 최소한의 접점까지 단절시키는 정신적 장벽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지나보니 그렇습니다.

20살 뭣모르던 새내기시절엔 한살차이도 커보였거든요.

그 누나와 제대로 된 통성명을 한 것은 그 시절부터 몇년 지난 뒤였습니다. 군복무를 하고 난 뒤였죠.

저는 복학을 한 뒤로 학교내신문의 칼럼과 문예파트에 글을 몇번 쓴 적이 있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아는 분의 부탁으로 땜빵용 글을 썼던거였네요. 솔직히 말하자면 대학신문을 누가읽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대충 구색만 맞춰 썼었더랬죠.

그러다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단편소설 부분을 좀 써달라는 하청을 받게됩니다. 부탁하신분도 어차피 1만자 정도 채우면 되니까 대충써봐라. 그거 누가읽겠냐

그래서 제가 조악한 단편소설 하나를 썼습니다. 이메일로 보냈더니 제목이 없지않느냐고 하길래 아 제목... 그 자리에서 제목도 대충 만들었습니다.

'포획의 어려움'

소설이라고 하기도 뭐한게 어릴적 산속에서 잡기힘들던 동물 얘기+게임속 희귀몹 잡기를 엮어 쓴거라 제목도 내용도 영 시원찮았죠. 신문 인쇄된걸 처음보고 나서야 제목 진짜 뭐같이도 지었네. 아무도 읽지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감상이었습니다.

근데 9월 학기가 시작하고 학교 신문을 읽는 특이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 동기누나가 저보고 이거 네가 쓴거맞냐고 물어왔거든요. 학과와 학번과 이름까지 적혀있는걸 저도 그 때 처음 확인했습니다. 원래 부탁한 사람이름으로 올라가는데 왜 그 조악한 단편소설만 내이름으로 올라갔는지 한동안 의문이기도했는데..

자기이름으로 올리기엔 너무 형편없어서 그냥 제 이름을 그대로 박아버린것 같단 결론이 나왔습니다. 어쨌든 그 누나가 저보고 그러더군요. 자긴 재밌게 읽었다구요.

그 말이 어찌나 창피했는지 모르실겁니다. 아 이럴줄알았으면 쓰지말걸. 임기응변이 제법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날은 어떻게 답할말이 없더군요. 그걸 읽는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안썼을거다라는 비루한 변명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한학기는 즐거웠습니다. 동기 누나와 그걸 계기로 좀 친해졌거든요. 자기는 이제 곧 졸업인데 너는 이렇게 즐거운 학교를 더 다닐 수 있어서 부럽다라는 말이 기억납니다.

그 누나가 4년동안 아주 즐거운 대학생활을 했구나라는 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얘기였습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은 묻지 않는것이 제 소소한 미덕입니다.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누나는 이미 전공수업을 다 들었기 때문에 시험관련 팁을 특히 많이 받았네요. 형편없는 제 실력에 비해 그 학기 학점이 높았던 것은 그러니까 그 누나 덕이겠죠.

나의 글솜씨에 호기심을 느껴 접근한 사과대 역대 최고의 미녀. 그렇게 우리는 운명같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라는 연대기를 쓰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만.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실을 쓰면 터무니없는 거짓이 되니까 쓰지않겠습니다. 저는 가진 재주는 많이없지만 나름 정직한 사람입니다.

아무튼 저에게는 즐거운 한학기였고, 누나에게는.. 즐거웠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가끔 낄낄대며 웃던 모습만 기억할뿐입니다. 유독 학교 졸업하는 것을 좀 우울해했던 것 같은데, 납득 못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어딜가도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 항상 호의적인 사람들. 웃는 얼굴 한 번이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는것처럼 보이는 학교생활.

적극적이고 활력있는 남자들의 수많은 접근이 가끔씩은 부담스러웠을수도있지만, 미움받는 것보단 낫지않을까.

그 누나가 막학기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나도 이제 다 됐다. 그치?

지금 돌아보면 고작 24살25살여자애가 세상 다 산것같은 말을 내뱉고있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당시엔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네요. 대학4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누나에게는 그 시간의 밀도가 훨씬 높지않았을까.

나처럼 피방이나 가고 공이나차고 이렇다할 외부활동 없는 사람의 4년과는 분명히 많이 달랐을테니까요.

그 누나 졸업식에는 안갔습니다. 겨울방학이랍시고 친구 몇이랑 물류센터 새벽알바를 했었는데 그거 하다보니 날짜감각이 사라졌거든요.

졸업식 주말 저녁에 누나한테 전화가 와서 밥 한번 얻어먹은게 다였습니다. 그날도 밥먹고 서로 낄낄대다가 헤어졌는데 뭔얘기했는지는 기억이 잘안납니다.

그러다 이번 설연휴에 그 누나를 근 8년만에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누나가 결혼하기직전 본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아주 오랜만인거죠.

이렇다할 후일담이 있을 사이는 아니었지만, 누나가 그 때 얘기를 꺼내더군요. 학교 다닐때 그 막학기가 참 재밌었다고.
그냥 동기랑 생각없이 떠드는 느낌이 들어서 재밌었답니다. 무엇보다 너는 어디가서 남얘기 안하는 것이 그땐 그렇게 편했다네요.

누나가 두살 많았던 것 때문에 여자동기들과도 아주 친하게 지내기는 좀 어려웠었나. 그 누구보다 즐거웠을 것 같았던 4년인데 내가 짐작한것보단 재미가 덜했던가 뭐 그런 소소한 생각을 했습니다.

물끄러미 책상에 놓인 유리잔을 바라보던 누나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나만의 시대라는 것이 있다더라. 나도 내 시대라는게 있었던것도 같은데. 그치?'

그 나만의 시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말에 낄낄대는 누나를 보다말고 저도 같이 킬킬거렸습니다. 오랜만에 웃음이 전염되는 경험을 했네요.

여전히 어딜가도 미인소리 들을 얼굴이긴 하지만 이제 애엄마이다보니 예전과 같지 않은것도 엄연한 현실인 바.

그렇게 예쁜 사람은 가는 세월이 더 서럽지않냐에 대해서 물어보려다 말았네요. 해가 바뀌고나니 나이먹는것이 서글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더 서글프다는 것도 주관적인 느낌일텐데 어디에서도 그럴듯한 답을 얻어내긴 어려울 겁니다.

다만 아주잠깐 얼굴위로 지나가는 표정에서 그런것은 느껴지더군요. 누나 역시 흐르는 세월의 완고함을 아쉬워하는구나.

차한잔마시고 헤어질때 그래서 그랬습니다. 누나 하나도 안 변했다고. 그 얘기를 보자마자했어야지 헤어질 때 하니까 빈말인게 다 티난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만.

그래도 나쁘지않았는지 웃더군요. 우리가 가끔하는 속보이는 빈말에도 약간의 효용은 있는법이죠.

어쨌든 말은 또 보자고 하고 헤어졌는데 각자의 일로 바쁜 사람들끼리 언제 또 보겠습니까. 오랜만의 만남이 그랬듯 부운같은 일입니다.

다만 대학생활의 한학기 학점을 높여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음료값을 계산했고, 누나 역시 그 막학기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고 하니 연휴 추억회상값으로는 아주 저렴한 지출이 아니었는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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