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III. 붓다, 세상을 버리고 떠나다. 7. 사성제 四聖諦
붓다가 출가 후 여러 가지 수행을 거친 후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었다는 말씀을 몇 차례에 드렸습니다. 그러면 궁금해지는 게 하나 있을 겁니다. 그가 깨달았다는데, 뭘 깨달은 건가요? 라는 거겠지요.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동행하던 다섯 명의 다른 수행자에게 자신이 깨달은 것을 가르치고,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여 붓다의 제자가 됩니다. 그 가르침의 핵심을 붓다는 ‘네 고귀한 진리’라고 규정했고, 이를 한자어로 ‘사성제’(四聖諦)라 번역한 겁니다. 붓다는 사성제를 가르침과 동시에 그것의 기반이 되는 세계관으로 연기(緣起)를 가르칩니다. 이번 글에서는 사성제를, 다음 글에서는 연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성제의 첫 번째 진리는 삶이 고(苦)라는 것입니다. 태어남이나 늙어감이나 병듦이나 죽음이나 모두 괴로움이고,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라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바 있는 오온(五蘊)에 따라 생기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지요. 붓다는 고통을 집착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인 집(集)의 진리지요. 이 집제를 조금 더 부연하면, 뭔가를 사랑하고, 갈망함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사랑은 긍정적으로 보고, 그것이 도가 지나치는 것을 집착이라고 하여 부정적으로 보는데, 붓다는 사랑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 것입니다. 아무 데에도 사랑을 주지 말라는 거지요. 그러니, 세상을 사는 삶 그 자체가 집착하는 것이고, 괴로움을 낳는 것이지요. 다음으로는 당위를 말하는 것으로, 그 집착을 소멸시켜야 함을 말합니다. 집착을 완전히 끊어 고통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하는 삶을 자신이 발견한 세 번째 진리로 삼은 거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밝혀야겠지요. 집착을 끊는 건 세상을 버리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인데, 그것은 필요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붓다가 발견한 네 번째 진리는 그 길 즉 도(道)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도가 바로 앞에서 말한 바 있는 팔정도라는 중도의 길입니다.
붓다가 발견한 이 진리는,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기존의 힌두교 세계에서 많은 수행자가 붙들고 고민하던 존재론적 세계관을 자신이 해석한 것이지요. 그러니 그의 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당시나 이후의 힌두 사상가들과 공유하는 바가 아주 많은 건 당연한 겁니다. 붓다가 살던 당시 북부 인도에는 매우 많은 수행자가 있었는데, 그들은 슈라마나(shramana. 沙門), 빠리브라자까(parivrajaka), 빅슈(bhikkshu), 야띠(yati), 산냐신(sannyasin) 등으로 불리던 세상을 버리고 나와 돌아다니며 걸식하면서 수행하던 사람들이었지요. 붓다 또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요. 붓다를 포함한 그들은 당시 세상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공유한 건데, 그건 다름 아닌, 왜 세상은 이 모양으로 고통스럽냐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의식에 동의하는 사람은 세상을 버리고 나오는 것이고, 동의하지 않은 사람은 여전히 세상 안에서 살겠지요. 그러니 붓다 당시 인도 사람들의 세계관 혹은 종교나 철학이 모두 세상을 부정하고 버리고 나온 것으로, 해석하면 잘못된 겁니다. 인도인들의 세계관의 다수와 주요 부분은 여전히 세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할 일 하면서 사는 것이지요. 그것을 고통으로 보든 쾌락으로 보든 집착으로 보든, 그건 그들의 시각이고, 남아서 사는 사람들은 세상 안에서 필요로 하는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장(章)에서 다루겠습니다.
그러면 붓다와 같이 세상을 버리고 나간 사람들은 세상을 왜 그렇게 고통의 바다라고 봤을까, 하는 의문이 들 겁니다. 당시 사회적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모든 세계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당시 사회의 역사적 산물일 것이기 때문이지요. 기원전 6세기 인도 동북부 지역은 1000년의 유목 생활을 끝내고, 농경 정착이 광범위하게 일어나 도시, 교역, 계급(카스트), 국가, 전쟁 등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른 새 시대였습니다. 그때는 철제 농기구가 광범위하게 전파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토지가 크게 확보되었으며 그 위에서 생산 증가가 크게 이루어졌으니, 농업과 상업과 수공업이 크게 발달하면서 도시 문화가 융성하였지요. 그런데, 사회 안에서는 여전히 전대로부터 내려오는 브라만 사제가 모든 도덕과 진리의 기준을 정하는 주체이고, 신분에 따라 제사 참여 여부가 결정되는 집단적이고 의례적인 종교 행위가 여전히 대세를 이룹니다. 새 시대 새 사회와 맞지 않는 구닥다리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관이었지요. 그 중심은 제사에 두었으니, 세상 모든 근본은 제사에서 나오고, 그래서 그 제사를 관장하는 브라만 사제에게 많이 바치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소를 엄청나게 바쳤고, 이를 독식하는 브라만은 배 터져 죽고, 다 빼앗긴 농민과 수공업자들은 배고파 죽을 지경이었지요. 붓다는 이런 상황을 고통으로 본 거지요. 그는 기존의 사회 체계 즉 브라만을 정점으로 하는 카스트, 의례, 종교 체계에서는 인간의 실존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는 인간 실존의 출발은 세상 중심의 행위와 그를 바탕으로 하여 성립하는 윤회의 세계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 것이지요. 이것이 붓다 세계관의 중심이고, 당시 힌두교의 기반이 되는 사상의 출발인 우빠니샤드와 전혀 다른 해석인 겁니다. 힌두교에서는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삶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붓다는 모든 것은 다 변하니 세상에서 사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즉 고통이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상에는 가치가 없다는 붓다의 가르침에 동의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