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IV. 세상이라는 밭 1. 쁘라끄리띠 Prakriti 자연
힌두교에서 세계는 정신과 자연을 존재의 두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교파에서는 둘은 따로 분리되어 독립된 것이라고 보기도 하고, 다른 교파에서는 자연 혹은 물질은 궁극적으로 영혼과 같은 것이지만, 나타날 때 마야와 같이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보기도 합니다. 이 둘의 관점에 따라 자연에 관한 개념은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이 ‘자연’을 쁘라끄리띠(prakriti)라고 하는데, 이것은 영원불멸의 영혼인 뿌루샤(purusha)의 대조적 개념입니다. 쁘라끄리띠, 즉 자연은 앞 장에서 다룬 인간의 세 가지 근본 성질인 구나(guna) 즉 따마스, 라자스, 사뜨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세 속성이 다양하게 섞이면서 다양한 자연의 현상이 생긴다고 봅니다. 쁘라끄리띠 안에는 좁은 의미의 자연을 비롯해, 물질, 육체, 영혼 바깥의 세계를 포함하기도 하고 더 넓게 보면, 변하지 않는 본질이 아닌 모든 감정, 생각, 욕망, 마음 등까지도 포함하기도 하지요.
고대 인도인들은 그리스의 플라톤이 규정했던 것처럼, 쁘라끄리띠가 영혼 즉, 뿌루샤보다 더 저급한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자연 또한 신성한 존재로,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 요소라고 보지요. 다만, 그 근본 요소를 극복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쁘라끄리띠 초월의 세계관은 수행자나 신학 하는 사람의 관념일 뿐이지요. 날마다 일상을 사는 즉, 물질세계 안의 보통 인간에게는 그런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에게 자연 혹은 물질이란, 초월해야 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대상일 뿐이지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신성한 존재로 여길 수밖에 없겠지요. 질긴 생명줄을 잡아주는 끈이니까요. 그래서 힌두교에서는 많은 신이 자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강과 산은 신성한 곳이고 그 자체가 하나의 신이지요. 동물과 식물 가운데 신성한 존재의 신으로 숭배되는 경우는 매우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연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 즉 하늘/공간, 바람/공기, 불, 물, 땅 또한 신성한 존재로 여깁니다. 자연은 그것을 구성하는 하나하나가 신성한 존재지요.
쁘라끄리띠는 그 자체가 여신인데,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여신으로 나타나지요. 어떨 때는 쁘리트위(Pritvi) 땅이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음식을 주는 어머니 빠르와띠(Parvati), 어떨 때는 어머니 강가(Ganga), 그리고 부와 풍요의 여신 락슈미(Lakshmi)가 되기도 합니다. 모두가 다 다르면서 결국에 하나인 여신이지요. 각각의 경우에는 다 각각의 신화가 있습니다. 몇 가지만 들어보기로 하지요. 우선, 땅의 여신 쁘리트위 이야기입니다. 태초에 인간들이 하도 탐욕을 부리고, 흙을 함부로 대하자, 쁘리트위가 작물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쁘리투 왕이 불같이 분노하면서 쁘리트위 여신을 내쫓아버렸고, 쁘리트위는 소의 모습으로 변신해 멀리 도망가 숨어버렸습니다. 그러자 쁘리투 왕은 여신을 찾아 있는 힘을 다해 용서를 구했고, 여신이 그를 받아들여 인간에게 식량과 번영을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자연이란 돌보지 않으면, 황폐함만 돌아오니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고, 자연을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요즘 현대인이 되새겨야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지요. 다른 신화 이야기 하나를 더 들려드릴까요?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는 자기 아내인 빠르와띠에게 세상이란 환상인데, 음식을 먹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힐난합니다. 그러자 빠르와띠 여신이 그런 바보 같은 시바를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나 없이 어떻게 사는가, 보자, 그런 심정이었겠지요. 그러자 세상의 음식이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세상은 기근에 빠졌고, 심지어 시바도 배고픔에 고통을 받았지요.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시바는 빠르와띠를 성심껏 숭배했고, 그러자 빠르와띠는 다시 나타나 사람들을 풍족하게 먹였지요. 다시 나타난 빠르와띠 여신의 이름이 ‘풍족한 음식’이라는 이름의 안나 뿌르나(Anna Purna)입니다. 네팔의 안나뿌르나 산은 그 여신의 이름을 딴 거지요. 여기에서 안나는 좁은 의미로는 음식이지만, 좀 더 넓은 의미로는 산, 그리고 자연을 뜻합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음식을 주니, 자연을 숭배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외에도 자연 숭배와 관련한 많은 신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고대 때부터, 지구, 산, 강, 숲, 동물, 식물 등 모든 자연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면서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그림은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식입니다. 위 그림 안의 붉은 부분은 불길입니다. 파란 부분은 바다지요. 강원도 어딘가에서 산불이 크게 나서 바닷가의 한 작은 마을까지 덮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에서 자연은 물질이고, 물질은 생명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재현하고 싶었지요. 메시지 안에 다닥다닥하게 붙어 있는 디테일은 필요 없습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 강렬하게 말하면 된다고 저는 봅니다. 글도 마찬가지고 말도 마찬가지로, 저자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부분만 재현하면 될 일입니다. 그래서 추상화는 저자가 세상에 알리기 위해 사용하는 이미지로 만든 인지적 도구인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