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IV. 세상이라는 밭 2. 아르타artha 富/實利
인도의 세계관은 세상을 긍정으로 하여 사는 것과 세상을 부정하여 그것을 버리고 떠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인도인의 세계관을 이 세상을 버리는 슈라마나 전통만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전통적으로 인도인이 추구하는 이상은 다르마(법), 아르타(부富), 까마(성性), 목샤(해탈)의 네 가지인데, 그 가운데 앞의 세 가지는 철저히 비(非)정신적인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애초에 힌두교가 생기기 시작한 베다 시대의 전통은 이 셋으로만 구성되었지요. 즉 베다 시대에 인도인들은 깨달음을 구하러 세상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다 편찬이 끝나가는 무렵, 힌두교에서 제사와 기복을 통한 물질 추구의 종교를 벗어나 영성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그런 움직임의 큰 조류로부터 불교가 나왔지요. 그리고 인도 사회는 세상을 긍정하는 물질적 세계관과 세상을 부인하는 영적 세계관, 둘이 공존하였고, 결국, 힌두교는 이 두 전통을 통합하여 비로소 오늘날 힌두교의 근간을 쌓은 겁니다.
이제, 우리는 인도인의 세계관이 제2장(章)에서 다룬 일련의 슈라마나 세계관으로만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넓게 보면 베다에 기반한 브라흐마나 전통과 중세 이후 밀교에 기반한 샥띠 전통으로 구성된 법과 도덕, 부, 권력, 사회관계 등에 관한 겁니다. 우선, 이 자리에서는 힌두 최고의 삶의 목표라고 하는 네 가지 가운데 아르타artha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가지 이상의 순서로 치면, 다르마가 맨 앞이고, 다음이 아르타고, 다음이 까마지만, 저는 아르타를 먼저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래야 다르마의 의미가 더 선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이지요. 아르타란, 부富를 의미하는데, 인도 세계관이 대부분 그렇듯, 뜻이 너무 넓고 포괄적이어서 한자어 한 글자 한 단어로 번역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아르타는 가장 쉬운 말로 번역하면, 요즘 우리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먹고사니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잘 사는 건 물론이고 나라가 잘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는 경제적인 부분도 있지만, 정치, 행정, 외교, 군사 등이 총망라하여 나라를 부유하고 부강하게 만드는 차원에서의 ‘부’의 의미입니다. 개인과 나라의 차원에서 추구하는 경제적 번영, 안정적인 삶, 사회적 지위, 권력 획득 및 활용 등을 의미하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어떤 종류의 명분이나 요즘 말로 PC주의 혹은 이념 등을 따르지 않고 상황에 맞게 바꾸어 어떻게든 잘 먹고, 잘 살게 하는 방편 즉 실리를 의미합니다.
힌두 신화 이야기 하나를 들어보시죠. 우선 개인의 부(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힌두교 최고의 신 가운데 하나인 끄리슈나는 어른으로 성장을 하여 드와르까Dwarka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적에 그와 함께 동문수학한 한 브라만 친구는 법도에 맞고 진실되게 살았으나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친구 끄리슈나에게 찾아가 좀 도움을 청하라고 종용했으나 그는 처음에는 꺼렸지만, 결국 끄리슈나를 찾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에게 찾아가면서 그는 친구에게 줄 선물로 쌀 튀밥 한 조각을 가지고 가, 그를 알현하고 그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끄리슈나는 친구의 발을 씻기고, 직접 쌀 튀밥을 받아먹으며 큰 기쁨을 표합니다. 그런데, 끄리슈나는 친구의 마음속 바람을 이미 읽고 있었기에 그가 떠난 후 그의 집을 궁전으로 바꾸고, 온갖 보물과 부를 그 집에 내려줘, 축복합니다. 신실한 마음으로 살면서 주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데 모든 걸 바치는 사람에게는 재복을 충만히 내린다는 뜻입니다. 해탈이나 깨달음 혹은 왕생극락과 같은 영적인 문제로 복을 받은 게 아니고, 이 세상에서 재물로 복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을, 무의미하게 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이야기에서 착한 일을 한 흥부가 큰 복을 받았다는 메시지와 비슷한 거지요. 결국, 인도 사회나 우리 사회나 사람들이 바라는 바는 다 비슷하다는 거지요.
아르타는 개인 차원이 아니고, 국가나 사회의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아르타가 단순히 개인의 부를 넘어서 공동체의 번영과 안정을 추구하는, “모두 모두 잘~ 살았단다.”를 메시지로 삼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정당한 방법으로, 국가나 사회 그리고 가정에 이바지하는 방식으로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아르타의 정신이라는 겁니다. 한 번 들어보시죠.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비슈마는 왕자로 태어나 차기 왕이 될 세자 자리에 있었을 때 아버지가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버지가 그 여인의 아들이 차기 왕권을 갖지 못한다면, 딸이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해 쉽게 승낙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아주 곤란해하자, 비슈마는 스스로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 나라의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부강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기에, 나라의 아르타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거지요. 그 사이에는 자식이 아버지의 뜻을 거르지 않고 효도하는 것이 가정과 나라의 번영을 위한 길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힌두의 이상은 결코 세상을 버리거나 해탈을 얻거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도 다른 문화권에서처럼, 잘 먹고, 잘 사는 거였습니다. 인도 사회가 우리 사회에 비해 다른 것도 있지만, 큰 틀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의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