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V. 세상이라는 밭 4. 까마Kama 性愛


인도인의 세계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힌두가 가지는 네 가지의 삶의 목표 즉 다르마(법, 도리), 아르타 (부, 실리), 까마 (성애, 즐거움), 목샤 (해탈)의 개념을 이해해야 하는 차원에서 두 번째 장(章)에서 목샤를 자주 다루었고, 바로 이전 두 글에서 아르타를 다루었습니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세계관이 인도인의 전적인 세계관은 아니라는 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순서를 그렇게 한 것이지요. 이번 글에서는 인도인이 얼마나 세상 안에서 욕구와 감정을 중시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나눠보도록 하지요. 목샤 즉 해탈을 인도인의 사유 문화라고 설명하는 글을 보면 마치 인도인은 원초적 본능으로서의 욕구와 감정을 무슨 죄인 것처럼 여기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건 인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런 사유는 인도의 일부, 세상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세계관이고, 대부분의 인도인은 그 욕구와 감정을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하는 목표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삽니다. 그 욕구와 감정 가운데 으뜸은 까마kama라는 겁니다.


까마는 보통 성애라고 번역을 많이 하는데, 앞서도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인도인의 세계관이 한자어로 옮기기에는 너무나 넓고 다양한 게 하나로 함축된 게 많아서 ‘성욕’으로만 이해하면 곤란한 점이 있습니다. 까마는 단순한 성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감각적 즐거움과 정서적, 심미적 욕망 전반을 의미합니다. 이성과 논리의 삶이 아니고 감성과 감정의 삶을 의미하는 거지요. 그러니 플라톤과 같은 그리스 철학자가 감각을 매우 폄훼하면서 이성만 우월한 것으로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이지요. 물론 붓다와도 전혀 다른 세계관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들은 음악, 미술, 춤, 연극 등 일련의 예술을 감상하는 걸 즐겼고, 사랑을 아주 높은 가치로 여겼으며, 애정 관계를 바람직하게 여겼지요. 그래서 신이고 사람이고 간에 모든 존재는 외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몸을 꾸미고 화장하고 치장하고 집을 장식하고 향을 피우고 하는 일에 열중이었지요. 그 위에서 성적 즐거움을 누리는 걸 전혀 죄악시하지 않았습니다. 고대에 《까마수뜨라》(Kamasutra)는 바로 이 까마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에 대해 철학적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으로 다룬 경전이 있을 정도지요. 물론 이 문헌은 고대의 것이니 그 한계는 명확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까마수뜨라》 자체가 주로 상층 카스트 남성을 대상으로 한 저작이기 때문에 슈드라나 불가촉천민 그리고 여성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의 성평등에 관한 보편적인 잣대로 보면 비판받을 게 셀 수 없이 많겠지요. 요컨대, 이 문헌은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도인의 미학과 인간관계, 삶의 기술 전반을 다루는데 주로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들이지요.


그러니, 힌두 문화에서는 까마를 인간의 본능이자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인정합니다. 물론,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들은 까마를 방종이나 쾌락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다르마(도덕)와 아르타(책임)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한정합니다. 다르마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에게 이 덕목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자기 삶의 경제적 수준에 맞지 않게 과도한 성을 추구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니, 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오해하는 대로, 고대 인도인들은 성욕을 숭배하니 그 사회가 얼마나 문란한가 하는 식의 비난은 기가 차서 대꾸할 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인도인들은 까마를 지나치게 찬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억제하지도 않는다는 게 가장 분명한 태도입니다. 인간 본능에 대한 인정이지요. 오래전에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마광수가 왜 한국 사회는 성애에 대해서는 이중적인지 질타를 한 맥락에서 살펴봐야 하는 거지요. 마교수는 한국 사람은 왜 성애에 대해 겉으로는 그렇게 엄숙하고 근엄하면서 실제로는 숨어서 지나치게 방종하여 병리적 사회 현상으로 흐르는지, 그 이중적인 위선을 벗어나야 한다고 질타하는 차원으로 생각하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성애란 적절한 시기와 방식으로만 실현하면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인간을 완성하는 데 이바지한다고 생각한 거지요.


이러한 그들의 시각이 신화에 잘 나타납니다. 까마는 사랑의 신인데, 여신이 아니고 잘 생기고 건장한 몸을 가진 남성 신이지요. 어느 날 쉬바가 악마를 물리치기 위해 아들을 낳는 일 즉 성관계를 해야 하는데, 깊은 명상에 들어가 여자는 거들떠보지 않으니, 신들이 회의 끝에 까마를 보내기로 했고, 까마는 자신의 꽃 화살로 시바를 맞춰 욕망을 불러일으키지요. 쉬바는 분노하여 제3의 눈을 열어 까마를 불태워버립니다. 그 후 까마는 몸이 없는 자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답니다. 한편 여인 빠르와띠는 쉬바와의 사랑을 위해 끝없이 수행하고 그것이 쉬바의 마음을 감동시켜 둘은 결혼하고 성관계를 하여 아들을 낳았답니다. 이 신화의 메시지는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으나,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식을 생산하는 일은 필수불가결하며 그를 위해서는 명상뿐만 아니라 섹스하는 것도 피할 수 없다, 그 섹스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힘의 근원이다, 라고 해석할 수 있지요. 그것은 마치 씨뿌리고 밭 갈면 풍성한 곡식이 자라나는 것과 같은 밝고 찬란한 것이지요. 이것이 힌두의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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