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V. 세상이라는 밭 10. 사띠야 Satya 진리


힌두교 최고의 경전인 서사시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유디슈티라(Yudhishthira)의 별명은 ‘사띠야 즉 진리를 말하는 자’입니다. 그는 적이 건 내기 도박에 빠져, 왕국과 모든 재산 그리고 아내까지 그들에게 농락당하는 역경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이겨 진리를 구현한 인물이지요. 그는 전쟁 중에 거짓말로 적들을 속여, 승리를 쟁취한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하루는 적진의 한 최고 장군에게 들으라고 “아슈왓탐마(Ashwatthama)가 죽었다.”는 말을 전합니다. 아슈왓탐마는 그 장군의 아들 이름인데, 실제로 죽은 건, 이름이 같은 코끼리였고, 그의 아들은 버젓이 살아 있었습니다. 유디슈티라는 평생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니, 적들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아버지는 무기를 내려놓고, 결국 죽임을 당하고 전황은 결정적으로 주인공 쪽이 유리하게 전개되지요. 말 자체는 사실이나 의도적으로 오해를 유도한다면 그것은 과연 진실 즉 사띠야satya인가, 하는 고민이 힌두 세계관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지요. 그러나, 고민은 고민일 뿐, 그러한 속임수는 정당하다고 보는 게 그들의 세계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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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장 큰 이유는 진실이란 인간이 지켜야 할 법이자 도덕이자 도리인 즉 진리라고 하는 ‘다르마dharma’ -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 안에서 작동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 큰 틀의 진리를 지키는 것이, 최고 가치이니,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가는 길에서 거짓과 속임수는 상대적이고,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세계관입니다. 이 진실 혹은 진리라고 하는 것을 사띠야satya라고 하는데, 흔히 힌두교의 두 가지 측면 즉 삶에서 지켜야 하는 도덕과 삶의 바깥 측면 즉 영적 세계가 추구해야 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지요. 사띠야는 작게는 사실fact의 표면적 진실을 의미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사건 개개의 표면적 사실을 넘어 사회 전체의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해석의 진리성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결국, 요즘 말로 하면, 개인의 지유나 인권은 사회 전체의 의무와 질서 유지를 위한 법 자원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지도자는 진실만을 말해야 하고, 그에 따라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은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더 큰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전쟁을 치를 수 있고,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지만, 사회가 정의롭게 유지되려면 거짓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고대에서 이상적인 왕은 사띠야를 따르는 자로 되어 있으나, 그가 행하는 사띠야가 어떻게 해석 가능한지는 더 깊이 따져봐야 하는 거지요. 이러한 사회적 의미를 간과한 채, 고대 인도의 왕은 영적 진실을 체화시키는 자라고 규정하는 건 그 사회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이와 관련하여 좀 더 현대적인 분석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 지금 인도공화국 헌법의 표제어로 전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어가 ‘진리satya만이 승리한다. Satyameva Jayate’라는 문구입니다. 이 문구는 인도공화국의 국가 문장(national emblem)으로 사용됩니다. 인도 헌법이 1950년 1월 26일에 발효되면서, 이 국가 문장은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는데, 고대 마우리야 제국의 아쇼까 왕이 세운 석주 하나의 돌머리에 새겨진 것을 따온 것이지요. 그런데, 그 표어가 말하는 ‘사띠야’라는 게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예컨대, 파키스탄이 테러를 감행했을 때, 무력으로 응징하지 않고, 그들의 만행을 외교적으로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는 방법을 택하는 것도, ‘사띠야’가 승리하는 것이고, 적의 도발을 무력으로 단호하게 응징하는 것도 ‘사띠야’가 승리하는 길인 겁니다. 힌두 사회에서 진리란 기독교의 바이블이 말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모든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그래서 맥락에 따라 해석해야 하는 상대적인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결국,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요.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사회나 국가나 공동체에 이익이 되거나 유리하게 전개되면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거짓이 참일 수도 있고, 참이 거짓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인도 사람들과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들은 너무 거짓말을 잘한다, 일 겁니다. 미국에서는 인도라는 나라를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도저히 우방으로 믿기 어려운 나라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는 말도 있고요. 세계 굴지의 다국적 기업의 CEO는 죄다 인도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있습니다. 이 여러 가지의 현상을 관통하는 건, 그들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는 겁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는 그들이 추구하는 실리 안에서 작동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힌두교 최고 가치인 사띠야의 사회적 의미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마하바라따 이야기는 저 어렸을 적에 명절날만 되면,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흥부전, 춘향전, 심청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어린아이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주고, 나누고 가르치지요. 그러한 사회적 교육을 통해 자라난 아이들은 상황에 따라 진리는 바뀔 수 있고, 그 본질적인 의미는 더 큰 다르마의 구현이라는 것을 죽을 때까지 마음속에 담고 살아가는 겁니다. 결국, 사띠야는 개인적 영적 가치도 있고, 사회적 가치도 있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게 우선이냐? 각자 알아서 정하고 따르는 거지요. 다만, 사회 안에서 살아나가려면, 사회적 진리를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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