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IV. 세상이라는 밭 11. 짜끄라와르띤 Chakravartin 轉輪王
앞글에서 사띠야 즉 진리의 상대성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사띠야가 상대적이고 사회적이다 보니, 정치와 관련해서 많이 사용되고,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가 현재의 인도공화국 국기에 적힌 국가 문양 ‘진리만이 승리한다.’라는 표어라는 걸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에 추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가 문양 ‘진리만이 승리한다.’는 구절은 인도 국가 문장의 중앙 아래에 표기되는데, 통상 널리 알려진 아쇼까 네 마리 사자석상 바로 아래 적힙니다. 사자석상은 고대 인도의 마우리야 제국 3대 왕인 아쇼까가 사르나트Sarnath에 세운 석주(石柱) 위에 자리하는 머릿돌에 새겨진 겁니다. 최초로 인도아대륙을 통일한 아쇼까는 국경 지역이나 붓다의 행적과 관련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적지에 여러 석주를 세웠는데, 그 석주 위에는 사자나 황소 등 동물들의 형상을 조작해 세워놓았는데, 사르나트의 석주는 네 마리 사자가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되어 있지요. 그 형상의 중앙에는 힌두교의 여러 상징 의미를 가지는 짜끄라chakra (법)輪이 위치합니다. ‘진리만이 승리한다.’는 글귀는 바로 이 짜끄라 바로 아래에 써서 붙입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아쇼까가 의미하고자 했던 짜끄라(輪)는 사띠야(진리)를 굴리는 바퀴이고, 그것을 만방에 펼치는 것이 곧 승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러면 그 짜끄라의 의미는 힌두교에서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굴리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짜끄라는 앞선 글에서 말씀드린 혹은 힌두교의 많은 개념이 그러하듯, 영적인 의미도 있고, 물질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영적으로는 주로 선(禪) 수행을 하는 사람이 끌어올리는 내부 영적 에너지의 중심을 뜻합니다. 보통 몸의 중심에서 바퀴 모양의 에너지가 모여 머리 꼭대기까지 연결된다고 형상화합니다. 물리적 의미로는 시간의 연속으로서의 윤회를 뜻하기도 하고, 다르마를 따르는 선이 다르마를 부인하는 악을 징벌하고, 세상 모든 곳까지 그 다르마를 널리 퍼뜨린다는 수레바퀴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악을 물리치는 신의 무기는 신화 속에서 이 짜끄라 형상을 띄는 게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힌두교 세 신 가운데 세상을 징벌하면서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비슈누 신이 쓰는 무기의 대표적인 게 이 수레바퀴 모양의 원형 회전 무기입니다. 비슈누의 화신인 끄리슈나가 악마를 죽일 때 던져 그의 목을 베어 버리는 무기가 바로 이 짜끄라 형상의 원형 회전 무기인데, 누가 봐도 악을 물리치는 것은 다르마 혹은 선을 굴리는 짜끄라, 라는 게 그 안에 상징적으로 담겨 있지요.
이렇게 되면 짜끄라를 굴리는 자는 위대한 정복 군주가 되겠지요. 그 정복은 무력으로 적을 정복한다는 의미보다는 다르마 즉 진리(사띠야) 혹은 도덕, 법을 통해 세계의 인민을 교화하여 그들로부터 숭앙받는 군주가 되겠지요. 이런 군주를 짜끄라와르띤Chakravartin이라고 하는데, 원래 힌두교에서 규정한 이상 군주입니다. 힌두교 신화에서 짜끄라와르띤 즉 전륜왕(轉輪王)은 비슈누가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 나타난 여러 화신이 받는 타이틀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이상 군주, 라마Rama와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 신화 『마하바라타』의 주인공 유디슈티라지요. 이 짜끄라와르띤은 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적을 무찌르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는 강한 군주가 스스로를 짜끄라와르띤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앗지요. 아쇼까가 그랬고, 우리나라의 진흥왕이 그랬습니다. 삼국시대에 고대 인도의 짜끄라와르띤의 개념이 신라에 알려져 그 이상 군주의 선진적 이념이 사회에 널리 퍼진 것은, 삼국 사회가 매우 이념화하고, 그 속에서 백성 교화 이데올로기가 작동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하니, 일단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에서의 이상 군주는 사해(四海)를 통일한 막강한 패자가 우선 조건이 됩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막강한 정복 군주라 해서 짜끄라와르띤이라 칭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적으로는 무자비했을지라도, 적어도 겉으로 표방하는 것은, 브라만을 섬기고, 사회도덕을 세우고, 가난하고 힘든 백성을 보호하는 일을 많이 하는 군주를 그들은 그렇게 부르면서 숭앙했지요. 결국, 중요한 것은, 폭력을 사용하느냐, 비폭력을 사용하느냐다 관건이 아니고, 그 수단을 통해 그 군주가 이루려는 사회가 어떤 사회이냐가 관건이라는 겁니다. 그 이상 군주가 하는 일은 다르마를 수호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다르마란, 후술하겠지만, 브라만 법전가들이 세운 카스트의 불평등 사회 위에서 지켜야 하는 사회 질서입니다. 그 안에서 짜끄라와르띤은 자비를 실천하고, 백성을 보호하며 만천하를 지키면서 자기 스스로는 희생하는 군주입니다. 그 안에서 그들이 상정한 이상적인 왕은 강하고, 탐욕을 부리지 않고, 베풀면서 자기들을 보호하는 자가 되는 겁니다. 이러한 모습을 대승불교에서 받아들여 붓다를 위대한 왕으로 섬기기 시작한 것이지요. 세상을 버리고 떠난 사람이 세상을 지키는 위대한 왕이 되어버린 겁니다. 이것이 신화의 힘이지요. 종교라는 건, 역사적 실체와는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먹힐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계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