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관

by 이광수


IV. 세상이라는 밭 9. 메루Meru 수미산


바로 직전 글에서 고대 인도의 국제 관계에 관한 세계관 즉 만달라 이론을 말씀드렸습니다. 대체로 볼 때 주변의 이웃과 수시로 관계를 변화시키면서 실리를 취하는 관계 이론이라고 설명을 해드렸는데요.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중국의 천자(天子) 이론을 들 수 있겠습니다. 중국 관계론의 핵심은 중화 세계는 천자를 중심에 두고, 여러 작은 제후국들이 그 천자에 대해 충성을 어떻게 하는지 그 정도에 따라 문명과 야만이 결정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 따르면 조선은 다른 어떤 ‘야만’ 세력보다 더 천자에 대한 충성이 강했고, 그만큼 문명국으로 즉 소(小) 중화로 인정받았다지요. 그것이 문명국으로서의 자부심이 될지, 복속된 제후국으로서 부끄러움이 될지는 역사가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인도는 이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종교적 개념의 관계론이 우주론으로 발달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주는 수미산 – 산스끄리뜨로는 메루Meru산이라 부릅니다. -을 중심으로 삼아 3차원적인 구조로 펼쳐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수미산은 우리가 이해하는 실제 하는 지형으로서의 산이 아니고, 관념적인 존재로서 우주의 중심축인데, 신을 비롯한 우주 모든 만물의 거처로 인식됩니다. 물론 그들의 우주론은 그들이 보고 아는 실제 인도 즉 인도아대륙과 그 주변의 지리적 지식을 활용하여 변형시켜 인식한 결과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요. 수미산은 일반적으로 높이 84,000 유순(由旬)이라 하는데, 1 유순이 어느 정도의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인지 지금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길이가 몇천 km인지, 몇만 km인지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깃거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 길이는 단순한 상상의 산물인데, 그게 얼마나 높은지를 따져서 뭐하겠습니까? 84,000이라는 게 무한의 의미를 지닌다는 상징적 의미만 파악하면 되지요.


수미산의 꼭대기는 신들이 사는 천상계로, 신들의 왕인 인드라(Indra)의 거처가 있지요. 그리고 그 아래에는 4개의 대륙과 8개의 소 대륙이 있는데, 중간에 바다를 사이사이에 두고 수미산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고대 인도인들이 이해한 실제 세계의 모습을 반영한 거지요. 이곳은 인간들이 사는 세계인데, 아수라와 같은 반신(半神)들도 이곳에 산다고 믿습니다. 맨 아래에는 지하계로 지옥이 있는데, 그곳에는 지옥에 떨어진 족속들과 우리말로는 용으로 번역되는 나가(naga 거대 뱀) 등이 사는 영역입니다. 수미산 중심 우주에 불교에서 말하는 신(데와 天),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육도가 맨 위에서 맨 아래까지 곳곳에 거처한다는 말입니다. 이를 수평적으로 보면 수미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동서남북 대륙 가운데 잠부 드위빠(Jambudvipa)라 부르는 남쪽 대륙 - 불교에서 염부제라 부르지요 -에 우리 인간이 삽니다. 염부제의 모습은 지금 인도인들이 사는 인도아대륙에서 가져온 거라,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도를 염부제라 간주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수미산은 피라미드 모양으로 생겼다고 기술하는데, 고대 인도인들이 인식하는 가장 안정적인 구조로 만든 겁니다. 일설에 의하면 인간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지평이 넓어지니 보기에 따라서는 역삼각형 형태로 생겼다고 할 수도 있다고도 합니다. 보통 말하는 피라미드형은 카스트라고 우리가 아는 바르나 체계의 형태로 알려집니다. 중앙은 수직으로 곧고, 사면은 계단식 또는 층층이 넓어지는 구조로 꼭대기에서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면서 하늘과 지상, 지하를 동시에 연결합니다. 따라서 고대 인도인들은 모든 하늘과 지하 세계가 이 산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서로 이동하면서 이 안에서 윤회한다고 믿지요. 인간이 사는 염부제에서 출발해 지옥과 천상을 거쳐 가면서 마침내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갖는 구조지요. 그래서 그들에게 수미산이란, 중국의 천자 중심의 중화 세계의 지리적 형상과 같이 실제적인 계통도가 아니고, 종교의 의미를 담은 영혼과 물질이 섞이면서 윤회하는 종교적 상징 이미지입니다. 즉, 수미산은 그들 세계관의 모든 면을 다 담고 있는 우주론적 축이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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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조가 가장 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우주 만물이 거하는 세계는 어떤 아주 정교하게 의미가 부여되어 짜인 질서에 따라 형성되었으니, 누구든 그 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다음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만, 이 우주론이라는 것이 힌두교 최고의 세계관인 다르마dharma에 의해 짜인 사회 질서를 물리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다르마와 함께 바르나varna와 아슈라마ashrama를 사회 질서의 핵으로 삼는데, 그 어느 것 하나 서투르게, 자연스럽게,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철저한 우주적 고안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그러니 반드시 이 모든 사회 질서에 복종하라는, 만약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맨 아래의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브라만 법률가의 사회 질서 유지 이데올로기를 이미지로 만든 거지요. 사람들을 교화하기에는 이미지만한 게 없으니까요. 그 구조 안에서 절대자 신의 뜻을 천상에서 받아와 지상 인간 세계로 전달하고, 뭔가 가슴 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가고, 지상에서 질서를 어지럽히는 짓을 한 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이야기가 신화 속에서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겁니다. 그런 신화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브라만 법률가들이 설정한 세상 질서에 순응하게 되고요. 그러니 힌두교 불교 사회는 주어진 사회 질서에 순종하며 사는 매우 안정적인 다른 말로 하면 사회 변동이나 혁명이 일어나기 어려운 곳이, 되기 쉽다는 말이 됩니다. 인도 사회가 여지껏 봉건적이라는 건 그만큼 종교의 힘이 크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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