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삶

: 추상화와 함께 읽는 힌두교와 불교 세계

by 이광수


V. 만민은 불평등 하나니 7. 슛디 Shuddhi 정화


앞선 글에서 희생제를 지내지 말라, 없는 사람들에게 제물을 바치게 해 자기들만 배부르게 하는 희생제를 거부하라는 붓다의 목소리가 역사 속에서 ‘생명을 해하지 말라’로 변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불살생은 완연하게 주요 힌두교 세계관이 되었지요. 그런데, 불살생이 중요한 사회적 덕목이 되자, 불살생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짐승 취급받는 일이 생깁니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더럽게 취급되었고, 짐승을 도축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도저히 상종해서는 안 될 쓰레기만도 못하는 사람들로 취급되었지요. 그들이 불가촉천민입니다. 세상일은 깨끗한 일과 더러운 일로 나뉘었고, 깨끗한 일을 하는 사람은 높은 카스트,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은 낮은 카스트가 되었습니다. 높은 카스트에 속한 사람일수록, 하루하루 일상을 깨끗하게 살아야 하고 혹여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일을 하게 되면, 몸을 깨끗하게 씻어야 했습니다. 그 피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이란, 사람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분비물 같은 것하고 접촉하는 일이고, 다른 살아있는 생명을 해하는, 즉 피, 주검 등과 접촉하는 일을 말하는 거지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장례식에 다녀왔다거나, 고기를 먹었다거나, 똥을 쌌다거나, 섹스했다거나, 불가촉천민이 자기 몸을 만졌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이 발생하면, 자기는 더러워지는 겁니다. 이런 경우 보통 높은 카스트는 정결을 매우 까다롭게 지키기 위해 목욕을 하거나 손을 씻는 것이고, 낮은 카스트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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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기 몸을 정화하는 것을 슛디shuddhi라고 합니다. 원래는 오염된 몸을 정화하는 의례를 의미하였는데, 힌두교가 대부분 그렇듯, 영적으로도 그 개념이 넓혀집니다. 그래서 영적 정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힌두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면, 이 사람들은 하루 내내 슛디만 하고 사는 사람들 같다는 느낌마저 받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욕합니다. 물론, 가난하고 카스트가 낮은 사람은, 상황이 허락하지 않으니 못하지요. 그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침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는 영적 정화를 한다고 믿는 만뜨라 즉 주문을 암송합니다. 예배를 드릴 적에 향을 피워 그 장소를 정화합니다. 식사는 물론 채식으로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상은 옛날 옛적 도시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상황에서 유효했던 것들입니다. 도시에서는 도저히 지키기가 어렵게 되었지요. 아침에 식사를 채식으로 했다고 칩시다. 이후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면, 내가 잡았던 손잡이가 방금 불가촉천민이 잡은 손잡이라면 어떡합니까? 출근 시간이 늦어 뛰어가다 땀이 흥건히 나고, 가다가 장례식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접촉하면 어떡합니까? 그래서 지금의 힌두 사람들은 도시에서는 이런 오염 정화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거나 자기 개인적인 공간으로 돌아가서 그날 있었던 모든 오염된 일을 몰아서 한꺼번에 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이 슛디의 개념을 정치적으로 확장해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 근대 인도에서 발생했습니다. 19세기, 인도가 영국 동인도회사의 식민지가 된 후, 인도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많은 사람이 인도의 부활을 가져오기 위해 백가쟁명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던 중 20세기 초 다야난다 사라스와띠Dayananda Saraswati라는 힌두 승려가 세운 아리야 사마즈(Arya Samaj)라는 단체가 설립되었습니다. 옛날 옛적, 베다 시대로 돌아가서, 이슬람에 의해 더럽혀진 민족정기를 되찾아 그 위에서 힌두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 운동의 하나로 그들은 힌두교를 떠나 이슬람교나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다시 힌두교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재개정 운동이지요. 그들은 무슬림이나 기독교를 공격하면서 대중 의례를 대규모로 거행했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인도 사회가 종교 자유와 관련되어 홍역을 앓게 되었습니다. 이후 독립 후 인도는 헌법에 의해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강제 재개종 같은 건 일절 허용하지 않았으나, 최근 힌두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모디 수상의 인도국민당이 정권을 세 번 연속으로 잡으면서 다시 일부에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나는 중입니다. 그러면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이 일상화하고, 그 안에서 사회적 약자가 핍박받는 시대착오의 현상이 연일 일어나는 중입니다.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숭고한 뜻이 사람을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변하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폭력을 쓰는 게 정당하다는 해괴하고 망측한 논리는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테러와 연계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종교만 그런가요?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이 미러링이라는 해괴한 방식으로 남성을 혐오하는 건 어떤가요? 자식 잘 되라고 훈육한다는 명목으로 고무호스로 아이를 두들겨 팬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그 남자 아이가 나라를 바로 세운다며 내란을 일으키고 전쟁을 시도했다는 건 또 어떻습니까? 종교든 사랑이든 가르침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그 형식은 변화하더라도, 중심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 사는 세상은 그것과 반대로 갑니다. 내용은 변하고 형식만 굳건히 지키기 위해, 사람까지 해치는 ...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비단 인도나 힌두교의 문제는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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